“무분별한 공항 건설 사회적 탄소비용 따져야”
신공항 사업을 곳곳에서 추진하고 있다. 새만금공항은 올해 예산이 90% 가까이 깎여 향후 계획이 불투명해졌지만, 이보다 18배 가까운 사업비(14조2637억원)가 투입되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이나 제주 제2공항(6조7700억원)을 비롯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울릉공항, 백령공항, 흑산공항 등이 대기 중이다. 여기에 경기국제공항이 추가될 기세다. 현재 운영 중인 15개 공항 중 10개 안팎이 매년 적자를 내는데 신공항 건설로 또 다른 적자 공항이 생길 수 있다. 무분별한 공항 건설은 전 지구적 과제가 된 탄소 배출 감소에도 역행한다. 공항만이 아니라 간척사업, 댐과 보, 도로 건설, 산업단지 개발 등 모든 토목사업은 탄소 배출을 피할 수 없다.
이산화탄소 1t 배출이 초래하는 모든 사회적 피해의 현재가치를 뜻하는 사회적 탄소비용(Social Cost of Carbon·SCC)을 고려해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한다면, 탄소 배출이 많은 공공투자의 경제성은 낮아지고,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사업의 경제성은 올라가게 된다. 자연히 공공투자 사업의 탈탄소를 꾀할 수 있다. 김승완 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가 지난 9월 4일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강조한 점이다. 전력경제, 전력시장 전문가인 김 교수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에너지·산업 전환 분과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다양한 정책 연구를 벌이고 있다.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인 넥스트그룹의 대표이기도 하다. 서울 강남구 넥스트그룹 사무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예비타당성(예타) 평가에서 SCC를 고려하고 있지만, 그 수준이 낮아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적 탄소비용의 의미는.
“공공에서 정책을 분석하거나 인프라 투자를 결정할 때 그 프로젝트로 인한 탄소 배출의 사회적 비용을 정량화한 수치입니다. 사회적 탄소비용은 결국 의사결정의 판단 기준 하나를 제시한다는 뜻입니다. 미래세대가 경험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외부비용을 고려해 의사결정을 하라는 의미죠. 국가가 하는 거의 모든 일에 연결되는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SCC가 실제 경제성 평가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
“SCC 수치는 사실 개념상으론 당락을 좌우할 만한, 그러니까 편익·비용 수치상으로 매우 큰 영향력을 차지합니다. 대기오염 물질이 섞여 있긴 하지만 전력 인프라 설비의 경우 전체 편익 중 20% 정도가 환경 편익으로 식별됩니다. 현재 우린 1t당 4만6000원 정도의 사회적 탄소비용을 반영하는데, 지금 1t당 7700원 수준인 배출권 가격보다는 훨씬 높죠. 하지만 유럽은 100유로에 이르고, 미국의 경우 바이든 정부가 발의한 청정에너지법에 1t당 55달러로 들어가 있습니다. 대략 우리 돈으로 7만~8만원인데 이 수치를 반영하면 거의 웬만한 (저탄소) 혁신 기술 투자는 다 이것 때문에 편익과 비용(B/C) 분석에서 1을 넘습니다. 반대로 공항 건설이나 무분별한 고속도로 건설은 B/C가 많이 떨어지게 되죠. 그런 인프라가 들어오면 차와 비행기가 더 많이 다니게 되고, 거기서 나오는 탄소비용이 어마어마하니까요. 사회적 탄소비용이 좀더 정교화되고,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 애초에 기본계획에 들어가기 전에 사업자들이 이걸 잘 고려해 사업을 할지 말지 판단하게 되고, 정치권의 선심성 공약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탄소비용을 어느 수준으로 정할지 합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기재부의 예타 조사 용역, 공공기관·공기업의 사전 예타 프로젝트를 수행하곤 하는데, 어느 순간 보니 당연하다는 듯 몇 년 전 산출한 SCC 수치를 그대로 쓰고 있더라고요. 적정한 SCC 수준에 대한 전문가집단의 합의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미국의 경우 기후변화 전문가로 구성된 범부처 워킹그룹(IWG)에서 사회적 탄소비용을 측정해 예타에 활용하는데 우린 아직 그런 논의 수준까진 가지 못했죠. 일단 정부, 학계, 민간기관 등 다양한 연구그룹이 각자 연구를 해서 값을 내놓는 과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범위가 클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수렴한다고 보거든요. 그렇게 논의를 시작해 범위를 좁힌 후 권위 있는 기관이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할 듯합니다. 지금처럼 알음알음 쓰는 값이 아니라 훨씬 탄탄한 근거를 갖추고 공식화된 값이겠죠.”
-사회적 할인율도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미래 발생할 편익의 현재가치로, 사회적 할인율이 5%라면 1년 후 실질소득 100만원은 현시점에서 95만2381원이다. 사회적 할인율이 높을수록 미래세대의 편익과 행복에 높은 가치를 매기지 않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게 된다.)
“지금 우리는 경제성 평가에서 사회적 할인율 4.5%를 적용합니다. 높거나 낮다는 판단보다는 최근 바뀐 상황을 고려해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때와 비교해 누적 배출량이 크게 늘었고, 금리 등의 거시환경도 많이 바뀌었으니 이를 고려해야 합니다. 실제에선 사회적 할인율이 5%, 3%, 1.5% 등일 때의 사회적 탄소비용을 구한 후 그중 적절한 값을 정무적으로 고르는 방식을 주로 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외부비용을 수치화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죠.”
-공공투자의 경제성 평가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면.
“아쉬운 점은 환경 편익을 고려한 타당성 조사 결과가 실제 의사결정에 크게 반영되지 않는 거죠. 지금은 전력수급 기본계획, 가스수급 기본계획, 국토종합계획, 항만 기본계획 등 각 부처가 SOC 사업의 기본계획을 세우고 그 후에 사전 예타, 본 예타를 거칩니다. 그리고 그 편익과 비용(B/C)을 분석한 결과가 1이 안 돼도 지금까지 끌고 온 과정이나 정책적 필요라는 명분을 업고 통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사결정 과정이 거꾸로 된 것이죠. 해외 사례를 보면 기본계획과 경제성 평가가 하나의 과정으로 통합돼 있습니다. 기본계획이 나오면 이미 B/C가 괜찮은 프로젝트들만 들어가 있는 거죠. 지난한 논의를 거쳐 기본계획을 수립하긴 하지만 한번 발표되면 그냥 쭉 가는 거죠. 우리도 기본계획을 세우고, 예타를 해서 다시 평가할 게 아니라 통합하고 효율화해 종합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국제 탄소가격이 2030년 수준이면 1t당 100달러 수준으로 수렴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런 급격한 상승에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탄소가격 상승은 비용 증가라는 리스크죠. 리스크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리스크를 실현해 털어내는 것입니다. 내부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탄소가격을 정한 후 투자 결정을 하면 실제 올랐을 때 타격이 크지 않죠. 선제적으로 한 수 높은 가격을 가정하고 움직이는 게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훨씬 낫다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SK이노베이션 등 일부 기업의 기민한 움직임은 굉장히 현명한 전략입니다. 공공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프라 사업은 운영기간이 굉장히 길기 때문에 사회적 탄소비용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공항이나 도로를 한번 지으면 50년 이상 쓰죠. 전력설비도 보통 30년 잡지만 실제로는 40~50년을 씁니다. 한번 결정하면 2050년을 훌쩍 넘기는 의사결정이라 탄소비용을 감안해 준비해야 하죠.”
-발전소나 송·변전 시설에 대한 주민 반대도 비용에 반영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정성적 요소로만 평가하죠. 그런데 제가 최근 어떤 인프라 사업이 지역 수용성 문제로 연기될 때의 전체 비용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연구한 적이 있는데 이런 비용으로 간접적인 정량화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의 수용성이 굉장히 낮아 아예 그 구간에 송전선로 건설을 못 한다면 사실 그 비용은 무한대인 거죠. 그럼 B/C는 0이 됩니다. 그런 식으로 의사결정에 고려할 수 있다고 봅니다.”
-넥스트그룹을 창립한 계기는.
“2016년 영국에 처음 가 박사과정 파견연구를 하고 이어서 같은 곳에서 박사후과정을 했는데 유럽이 40도를 넘는 폭염으로 고생할 때였어요. 영국도 에어컨이 없는 집이 많아 많은 사람이 온열질환으로 죽거나 아팠습니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기후부정론자는 사라졌죠. 전력시장은 기후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음에도 한국에서 전력을 공부할 땐 아무도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고려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영국은 너무나 당연하게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고, 국가감축목표를 세우고, 모든 사회 분야에서 탈탄소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해 있는 거예요. 다만 기후변화 대응 속도에서 정당과 전문가별로 차이가 있고, 시장의 원리를 활용할지, 국가가 주도해 계획할지 방법론의 측면에서 의견이 조금씩 다를 뿐이었죠. 한국에 와서 뜻이 있는 전문가와 연대해 기후변화 융합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죠. 모인 동료들의 배경이 주로 공학·경제학이라 우리가 잘 하는 걸 하자, 계산으로 확실한 근거를 마련해 시민사회와 정부의 건강한 의사결정을 돕자는 취지에서 출범했습니다.”
-넥스트그룹의 향후 연구·활동 계획은.
“빠르게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기후변화의 적응 비용을 낮춘다는 가설을 증명하는 연구입니다. 기후변화는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자본을 기후적응에 투자해야 한다는 일부의 이야기들을 반박하기 위함입니다. 1단계로 기후변화의 물리적 위험을 제대로 산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프라가 받게 될 피해를 정량화하는 것이죠. 이게 모여야 SCC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죠. 전력망이 포화된 상황에서 송전망을 짓지 않고 배터리에 전력을 저장해 송전망이 여유로울 때 송전하는 방식이나 송전선로 건설이 불가능한 구간에서 전력을 수소로 바꿔 파이프라인이나 튜브 트레일러로 보내는, 다양한 에너지원의 통합 모델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1일로 4년차가 됐는데 조직 규모로 4배, 예산 규모로 10배 성장했습니다. 우린 특정 기업과 용역 계약을 맺지 않고, 기후변화 연구를 지원하는 해외 재단의 후원금을 받아 운영 중입니다. 목표는 브루킹스연구소, 세계자원연구소, 로키마운틴연구소처럼 되는 거죠. 해외에선 독지가의 기부를 받아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곳이 많은데,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부자들이 예술가를 후원한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나라에도 기후변화 연구를 후원하는 독지가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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