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베트남,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바이든 “중국 억제 원치 않아”
미국과 베트남이 10일(현지시간) 양국 관계를 최고 단계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반도체와 희토류 등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미국으로선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베트남 입장에서도 첨단기술 공급망 분야에서 실익을 챙기는 것과 함께 남중국해 등으로 갈등을 빚는 중국과의 거리두기에 나섰다는 의미가 있다.
이날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베트남 권력서열 1위인 응우예 푸 쫑 공산당 서기장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동맹’을 맺은 국가가 없는 베트남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가 최고 수준의 외교관계다. 지금까지 베트남이 이 관계를 맺은 나라는 한국과 인도, 러시아, 중국 등 4개국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0년 간 베트남과의 관계가 급진전해 온 사실을 거론하면서 “이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전 당시 대적했던 미국과 베트남은 1995년 국교를 정상화했고, 2013년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미·베트남 관계의 극적인 변화는 미·중 갈등 속에 양국의 셈법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이다. 중국 견제를 최우선 외교 과제로 내건 미국은 인도태평양 역내에서도 중국의 입김이 큰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을 파트너로 확보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사회주의 국가로 중국과 친선을 유지해온 베트남도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 등으로 인한 안보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과 안보 협력을 확대해 왔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에서 눈에 띄는 것은 경제 분야 합의다. 양국은 새로운 반도체 파트너십과 희토류 공급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각각 체결했는데, 둘다 미국이 추진하는 ‘탈중국’ 공급망 재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베트남은 중국 의존도에서 탈피해 반도체 등 핵심 산업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미국이 새로운 투자처로 주목하는 나라다. 하노이에서 11일 열린 양국 기업의 비즈니스 회의에 참가한 인텔 등 상당수 기업들도 베트남에 이미 투자했거나 투자를 확대할 구상을 갖고 있다. 베트남도 자체 반도체 생산 능력을 갖추겠다는 목표로 미국과의 기술 협력을 환영하고 있다.
베트남은 또한 스마트폰과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 필수적인 희토류 매장량이 중국 다음으로 많다. 전기차 전환을 가속화하면서 중국의 ‘자원 무기화’ 시도에 대응해야 하는 미국으로선 베트남과의 협력 강화가 필요한 셈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행정부 관리들을 인용해 미국은 베트남이 중국과의 협력을 전면 포기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베트남이 미국을 중국의 ‘대안’으로 여기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미국은 또한 양국 안보 협력 강화 차원에서 베트남에 890만달러 상당의 군수 물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베트남이 군 현대화 추진 과정에서 러시아로부터 막대한 양의 무기를 수입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베트남은 미국과 밀착하는 와중에도 러시아로부터 향후 20년간 총 80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구매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NYT가 베트남 정부 내부문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베트남 방문 목적이 ‘중국 견제’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하면서도 “문제는 중국이 통상 등의 분야에서 게임의 규칙을 바꾸려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최근 경제 상황을 이례적으로 자세히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그간 중국의 정책상 문제를 비롯해 국제적 성장과 연결된 문제”라면서 “그렇다고 이로 인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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