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없이 가벼운 사랑과 집착이 불러온 파멸…연극 '카르멘'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자유분방함을 앞세워 한 없이 가벼운 사랑을 하는 카르멘, 사랑한다는 이유로 카르멘을 소유하려 드는 돈 호세, 지고지순한 순정으로 옛 연인을 떠나지 못하는 미카엘라.
극단적인 인물들이 서로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치정 멜로극을 보고 있자면, 사랑이 참 쉽지 않다는 점이 절실히 다가온다. 지난 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한 서울시극단의 연극 '카르멘'은 각자의 방식대로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세 인물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사실 '카르멘'은 비제의 오페라로 익숙하다. 이 오페라는 프랑스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번에 연극 무대로 옮겨온 '카르멘'은 원작 소설과 비제의 오페라를 섞어 고선웅 서울시극단장이 각색한 것이다.
연극에서 단연 눈에 띄는 점은 오늘날의 시선으로 바라본 캐릭터에 대한 해석이다. 보통 오페라에서 카르멘은 매혹적이지만 난잡한 여자로, 돈 호세는 사랑의 열병을 앓는 남자로 묘사된다. 돈 호세는 악한 여자 카르멘 때문에 파괴당하는 불쌍한 피해자처럼 여겨져 왔다.
고 연출은 이런 기존의 시각을 깨고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운 새처럼 날아다니고 싶어 하는 카르멘을 자기 여자로 만들고 싶어 하는 돈 호세의 행동이 집착이란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카르멘을 구속하려 드는 돈 호세의 행동은 오늘날 스토커 범죄와 다를 바 없다. 고전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동시대 관점으로 재해석한 연출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살 만하다.
고 연출은 개막일 열린 언론 대상 시사회에서 "이 작품을 만들기로 처음 마음먹었을 때 '돈 호세는 그러지 말아야 했다'는 감정이 가장 중심에 있었다"며 "그게(돈 호세의 행동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 반면 카르멘은 그렇게 큰 잘못이 없다는 점에 관객들이 공감했으면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카르멘이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돈 호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고 마음이 떠나버렸다며, 남은 것은 '네 몫'이라고 말하는 카르멘은 무정하다. 카르멘의 당당함은 무결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이 결여된 미성숙한 인간이 가진 뻔뻔함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돈 호세의 옛 연인 미카엘라 역시 미성숙하기는 마찬가지다. 돈 호세의 마음을 돌리려고 무단히 애를 쓰고, 자기 자신까지 내던져버리는 미카엘라는 지고지순한 여성이 아닌 어리석은 인간으로까지 느껴진다.
이런 세 사람의 미성숙한 감정의 소용돌이는 연극의 마지막에 다다라 폭발한다. 돈 호세의 카르멘에 대한 집착은 광증으로 변하고, 카르멘은 이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듯 돈 호세를 자극한다. 미카엘라는 절규 속에 다시 한번 자신을 내던진다. 처참한 결말은 밝은 한 줄기 빛과 흩날리는 종이꽃으로 아름답게 연출돼 비극적인 정서를 더 부각한다.
연극은 마치 시를 읊는듯한 대사로도 관객들의 이목을 끈다.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배우들의 말투는 각 인물의 내면을 곱씹게 만드는 장치지만, 때로는 대사가 작게 들려 답답하거나 이질감이 느껴져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이에 대해 고 연출은 "예스러운 연극의 맛도 내고, 문학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상언어와 다르게 낭송하듯 문장을 시처럼 표현했다"며 "대사가 자연스럽지 않으면 연극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스러움만으로는 무대를 절대 채울 수 없다. 노래와 언어 중간 단계로 관객들이 문학적인 풍취를 느꼈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연극에는 고 연출 특유의 유머 감각이 깃든 장면이나 카르멘과 담배공장 여공들이 추는 플라멩코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다만 볼거리를 축소하더라도 인물들의 심정 변화나 내면 묘사에 좀 더 집중했다면, 오페라로 익숙한 작품을 연극으로 보는 매력을 더 돋보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공연은 다음 달 1일까지.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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