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에 맞서다]⑱ 외지청년 정착 늘며 인구감소에도 출생아↑
합계출산율 1년새 1.38명→1.46명 상승,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4위
의성군, 5만명대 인구 지키기 위해 청년창업가 교육·지원 '안간힘'
[※ 편집자 주 = 2010년대 중반 지역소멸론이 제기된 당시 79개이던 '소멸 위험' 지역은 올해 118곳으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이제 그 그림자는 대도시까지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암울한 현실만을 얘기하는 이때 온 힘으로 저출산과 초고령화에 맞서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인구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그곳, '지방소멸에 맞서는' 그곳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해 매주 월요일 1편씩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의성=연합뉴스) 김선형 기자 = 경북 의성군은 1966년까지만 해도 인구가 20만3천여명에 달했던 제법 큰 도시였다.
시(市) 인구 기준을 '5만명 이상'으로 규정한 지방자치법만 놓고 보면 당시 시로 승격되기에 충분했을 정도였다.
넓은 평야지대에 젖줄인 낙동강을 끼고 있는 의성군의 앞날에는 꽃길이 펼쳐진 듯 보였지만 농촌인구가 감소하면서 지난달 기준 50여년 전의 4분의 1 수준인 5만35명 도시로 추락했다.
당장 인구 5만명선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인구소멸 위기 대표지역이라는 '오명'마저 쓰고 있다.
하지만 의성군의 앞날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외지 청년들의 정착이 이어지면서 이 지역의 지난해 출생아 수는 전년도보다 7명 많은 185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면서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도 1.38명에서 1.46명으로 상승했다.
17개 시도 평균치(0.79명)를 훌쩍 웃도는 수치다. 전국적으로 봐도 전남 영광(1.80명), 전북 임실(1.56명), 경북 군위(1.49명)에 이어 4번째로 높다.
인구 감소의 늪에서 당장 탈출하기는 어렵겠지만 의성군은 귀농·귀촌인과 청년 창업가 유치 등을 통해 도약을 꿈꾸고 있다.
'도시청년 시골 파견제', '도시청년 의성 살아보기', '시범마을 청년 일자리', '스마트팜 창농' 등 외지 청년들의 이목을 끌만한 여러 시책의 성과가 도출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뱃사람을 창업가로 만들다
샐러드 등 1인 가구용 간편식을 유통하는 의성늘보 배성룡(34) 대표는 몇 년 전만 해도 '뱃사람'이었다.
고향인 대전을 떠나 부산의 해사고등학교와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등 항해사로서 오대양을 누볐다.
그러나 뱃일에 회의를 느낀 그는 돌연 바다를 떠나 2019년 3월 연고도 없는 의성군 의성읍에 정착했다.
고향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는 이유로 택한 곳이지만 지금은 제2의 고향이 됐다.
정착 1년쯤 뒤인 2020년 4월에는 아들을 얻었다. 삶의 터전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의성군에서 그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배 대표의 의성군 정착을 도운 제도는 '도시청년 시골파견제'.
엄격한 심사 과정을 통해 관광상품 개발·판매, 문화예술 창작활동 지원, 일반창업 등에 참여할 청년들을 선발, 자금을 마련해 주고 역량 강화를 위한 전문가 교육도 지원하는 시책이다.
배 대표는 선발 과정을 무난히 통과한 후 이곳에서 의성늘보 운영을 시작했다. 그의 권유로 의성에 정착한 일등 항해사 출신 장시영(37)씨도 동료가 됐다.
이 둘이 운영하는 샐러드 판매점 장사는 너무나 잘됐다.
주요 고객은 이른 아침 출근하는 관공서 공무원들인데, 지난해 총매출이 2억3천만원에 달했고 올해에는 4억8천만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씨의 동료인 장씨는 "의성군에 온 뒤 돈벌이만이 아닌 일자리 창출, 도시 재생, 지역 재활성화 사업 등 제 능력으로 만들 수 있는 성과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양화 그리던 백패커…조금 불편한 의성을 가꾸다
도시청년 시골파견제의 유혹에 의성군의 문을 두드리는 청년들이 줄을 잇고 있다.
'예술이다' 박진영(40) 대표도 이 시책의 지원을 받은 대표적인 귀촌 창업가이다.
박 대표는 서양화 작가로, 대학에서 7년간 강의하다가 2021년 과감하게 인천 생활을 접고 의성군에 정착했다.
그의 주요 일과는 관광 콘텐츠 개발·운영이다. 지난해 1억3천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인 2명과 함께 캠핑카를 이동형 스튜디오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데, 요즈음에는 의성군 다인면의 의용소방대 폐건물을 임대해 여행자 거점 라운지 시설로 꾸미고 있다.
그가 겨냥하는 고객층은 노지 캠핑을 즐기는 야외 활동가들이다.
박 대표는 "의성은 여행하기 편한 도시가 아니다"며 "오히려 이런 불편함을 장점으로 활용하자고 창업 아이디어를 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알려진 관광지가 많이 없다는 건 그만큼 갈 곳이 많다는 역발상이었다.
의성에 정착하기 전 보부상처럼 전국 곳곳을 떠돌며 즐긴 배낭 도보여행의 경험도 이 사업의 밑거름이 됐다.
그는 "백패커처럼 불편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런 이들이 여행하기 좋은 매력적인 도시가 될 수 있는 장치들을 의성에서 만들어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성군과 마치 사랑에 빠진 듯한 박 대표는 "소멸 위험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그곳에도 가치가 있는 게 많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시범마을 청년일자리'…남성모델 '꽃농부'로 변신
농특산물 유통 마을기업인 어글리스테이션 이황현(29) 대표는 '꽃농부'로 불린다.
대구에서 자란 이 대표는 서울에서 모델 활동을 하다가 26살이던 2019년 친구 따라 의성군 안계면에 귀촌했다.
일과 가정, 여가, 자기계발, 사회활동 등이 조화로운 워라밸을 누리려 했다는 게 귀촌 이유다.
그러나 요즈음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것은 물론 주말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일한다. 그것이 마냥 즐겁다고 한다.
그는 조합을 차려 과일은 물론 농민들이 키운 농특산물로 고구마말랭이, 꽃차 등을 만들어 온라인 판매하고 있다.
점점 규모가 커진 조합에서는 청년 농부와 타지역 출신 청년들을 더해 20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5억원에 달했고, 올해에는 전국 단위 우수 마을기업에 선정됐다.
어글리스테이션이 짧은 기간 이렇게 성장한 배경에는 '의성형 시범마을 청년 일자리' 사업이 있다.
그가 귀촌할 당시 의성군은 관외 45세 이하 청년과 60세 이하 지역 주민의 공동 창업을 조건으로 1억원을 지원했는데, 이 대표가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데 종잣돈이 됐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못난이 과일을 카페에 납품하려 했는데 코로나19로 힘들었다"며 "직접가공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가공시설을 갖춘 마을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딸기밭에 홀린 고고학자…귀농 주춧돌 된 창농 프로그램
"어쨌든 지금은 농부입니다. 의성에서 농부로 살기로 했습니다. 걱정할 게 따로 없습니다."
지난 5월 2일 최철민(37) 곰배밭 대표는 스마트팜 농장에서 정성스레 가꾼 딸기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도시청년 의성 살아보기'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며 소회를 꺼내놨다.
"귀농할 때 어떤 작물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한데 의성에는 마늘만 있는 게 아니라 자두도 있고 딸기도 있다"고 말하는 최 대표의 얼굴에서는 여유와 행복이 묻어났다.
의성군 단촌면의 2년차 귀농인인 그는 늦가을부터 봄철까지 매일 하루 8시간씩 일하며 200㎏의 딸기를 수확해 농협에 납품한다. 올해 순수익은 8천800만원가량 됐다.
최 대표는 짧은 기간 어엿한 농부로 성장했지만 두 해 전만 해도 중국에서 활동하던 고고학자였다.
2014년 중국과학원 고척추동물 고인류연구소에 취업해 중국 전역의 발굴 현장을 누볐다.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던 그는 정착을 결심했고 귀국길에 올랐다. 고생물화가(팔레오아티스트)인 중국인 아내도 그를 따랐다.
최 대표는 부산 출신이지만 의성군을 정착지로 선택했다.
이 지역에서 창업 실습 1년 과정을 수료하고 스마트팜 창농 프로그램을 밟은 게 큰 도움이 됐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도비·군비를 더해 1억5천만원을 지원받았고 2억원을 대출받아 스마트팜 농장인 곰배밭을 차렸다.
재능기부에도 열심이다.
이 대표는 인근 단촌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텃밭을 개방했고, 그의 아내는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제가 매료된 의성이 소멸하길 바라지 않는다"며 "제가 살기로 결심한 이 마을의 변화를 끌어내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의성군이 운영하는 '도시청년 의성 살아보기' 두 달 프로그램도 지원하고 있는데, 많은 예비 귀농인이 이곳을 찾고 있다.
"소멸 막자"…유입 청년 지원·교육 총공세
2010년 5만8천832명, 2020년 5만1천724명, 그리고 지난달 5만35명.
의성군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인구소멸 위기 지역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구정책이 활발하게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3월(4만9천954명) 인구 5만명 선이 붕괴했다가 4월(5만81명) 다시 회복하는 등 위태위태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경북 귀농 실적 1위, 전국 귀농·귀촌 유치 2위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공무원들의 '공'이 크다. 이광대 청년정책과 정책기획팀장이 대표 인물 중 한명이다.
이 팀장과 팀원들은 의성군에 정착하려는 청년 창업 131개 팀을 관리하고 있다. 창업팀 중 외부에서 유입된 인원만 122명에 달한다.
2020년부터 8∼12주 단위로 진행되는 '도시청년 의성 살아보기'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는데, 209명의 참여자 중 36명이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옛 한방병원과 여관, 목욕탕을 개조한 기반시설도 조성됐다.
지난 5월에는 안계면 용기리에 3층짜리 사무공간인 청년키움센터가, 지난달에는 가음면 가산리에 청년 창업을 돕는 드론스포츠센터가 문을 열었다.
안계면 시안리에는 외식 창업 공간, 로컬푸드 카페, 스마트타운 형태의 복합문화센터가 늦어도 내년 2월께 들어선다. 금성면 대리리에는 공유주방과 셰어하우스 등이 갖춰진 복합 숙박시설이 마련된다.
의성군의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창업 청년들을 교육하고 개별적으로 컨설팅하는 것은 물론 판로 개척도 돕고 있다.
군은 청년발전기금 확보에도 매달리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청년발전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를 제정했는데, 2026년 말까지 80억원을 조성하는 게 목표다.
이 기금은 청년 교육, 창업, 복지 증진, 문화예술 활성화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입된다.
이광대 팀장은 "지방에서의 성공은 청년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지만 의성군의 강점은 항상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시는 이웃들이 항상 곁에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sunhy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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