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그들은 당신 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오응석 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 2023. 9.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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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응석 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

오늘은 이야기에 앞서 OX 퀴즈를 하나 던져보려고 한다.

Q. 낫또를 매일 먹는 것은 건강에 좋다

정답은 무엇일까. O일까 X일까? 위 질문에서 낫또 자리에 녹즙이나 아보카도를 넣어보면 어떨까. 그러면 답이 달라질까.

질문은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단순하지 않다. O라고도 X라고도 한 마디로 답하기가 어렵다. 질문을 받은 독자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답이 제각각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무런 질병 없이 건강한 사람이 적당한 양을 적절히 먹는다면 낫또도 녹즙도 모두 유익한 식품일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뇌경색 치료 후 매일 항응고제(anticoagulant)를 복용하는 사람이라면? 그때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런 경우 비타민 K의 함량이 높은 낫또, 청국장, 녹즙, 허브티 등의 식품들은 금기이다. 항응고제 복용 중 상처가 나면 출혈이 멈추지 않을 수 있어 이를 뽑거나 주사를 맞을 때도 의사와 반드시 상의가 필요하고, 출혈이 생길 수 있는 타박상이나 열상을 조심해야 한다.

이렇듯 타인에게 이로운 식품이 내게는 독이 되는 일도 있다. 비타민K에 효능뿐 아니라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한번은 뇌경색 치료를 마치고 건강을 유지하다 갑자기 자연출혈로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가 있었다. 혈액응고검사를 해보니 INR 수치(International Normalized Ratio)가 매우 올라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의사항을 잊어버리고, 비타민K가 많이 들어있는 각종 즙류를 다량 구입해 먹다 문제가 생긴 눈치였다.

사람이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지는 법이다. 마음이 약해지면 귀가 얇아지기도 할 것이다.

내원하는 환자 대개는 전문의의 처방대로 약을 정확히 복용하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환자들도 만나게 된다. '경험자'라며 조언하는 지인의 말을 듣고 약을 임의로 넣었다 뺐다 하거나 약을 제때 먹지 않고 모아두는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 생각지 못한 병에 충격을 받으면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 몇 알만으론 부족한 기분도 들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잘 먹지 못했던 값비싼 식료품과 영양제를 구입하면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보상심리에 TV 드라마에 PPL로 등장하는 건강기능식품을 구입하기도 할 것이다. 영양제를 한 주먹씩 삼키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뭔가 더 먹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나만 모르는 명약을 먹고 있는 것 같아 밤마다 인터넷 창을 들여다보게 된다. 영양제는 말 그대로 영양제이지 치료제는 아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 SNS와 유튜브에서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정보가 흘러넘친다. 현직 의사, 약사라고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는 유튜버들이 올려놓은 썸네일을 보면 동영상을 시청하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의사는 절대 안 알려 주는 약', '병원 안 가도 되는 홈케어' 같은 제목을 클릭하다가, 잠들기 직전 추천제품이든 식품이든 주문하게 되는 식이다.

하지만 건강 관련 정보를 쏟아내는 인플루언서와 유튜버들이 당신을 아는가? 지금 당신의 건강 상태가 어떠한지, 이전에 어떤 질병을 앓았는지, 어떤 약을 장기복용 하고 있는지, 그들이 알고 있는가? 그들은 당신 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 채, 건강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식품을 추천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지문이 다른 것처럼, 우리의 몸도 다른 누구의 몸과 똑같지 않다는 점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같은 질병을 가지고 있더라도 개인의 나이와 병력 등에 따라 치료약의 종류와 용량을 조절해야 한다.

음식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먹으면 다 보약."이라는 말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때, 잘못된 정보로 인한 오남용도 줄어들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오늘 한번 떠올려 보았으면 하는 말이다. 모두가 건강전문가를 자처하고, 다양한 의학정보가 넘쳐나는 요즘 같은 시대엔 철 지나고 식상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기본을 중시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오응석 충남대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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