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종이 온다] ③외래침입종 3천500종…연 565조원 경제손실
국립생태원, 모니터링 강화 계획…생태계 건강성 회복도 과제
(울릉=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외래종이 생태계에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하와이를 초토화한 산불 원인의 하나로 전문가들은 불이 더 잘 붙는 외래종 초목에 하와이가 '점령'됐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는 지난 4일 공개한 '외래침입종과 그 통제에 대한 평가보고서'에서 외래침입종에 의해 발생한 경제적 손실을 추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외래종은 3만7천종 이상 있으며 매년 약 200종이 새롭게 발생해왔다.
보고서 공동 저자인 영국 생태학자 헬렌 로이 교수는 전체 외래종 가운데 37%가 1970년 이후 보고됐다면서 "지금대로라면 2050년 기준 외래종 수는 2005년 대비 36%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래종 중에서도 지역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을 해치고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생물, 즉 외래침입종은 3천500여종이다.
무척추동물이 1천852종으로 가장 많았다. 식물이 1천61종, 척추동물이 461종, 미생물이 141종으로 뒤를 이었다.
2019년 한 해 동안 외래침입종에 의해 발생한 경제적 비용은 4천230억달러(약 565조6천억원)에 달했으며, 외래침입종에 의한 경제적 비용은 1970년대 이후 10년마다 4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외래침입종은 1차 산업에 피해를 줬다.
카리브해와 멕시코만이 원산지인 '검은줄무늬홍합'은 인도 생태계에 정착해 토착 조개류, 굴류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어민에게 피해를 줬다.
최근 이탈리아 동북부의 베네토주는 북미 대서양 연안에 서식하는 외래종 '푸른 꽃게'(블루크랩)가 지중해까지 넘어와 조개 양식장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아무르불가사리와 유령멍게가 해양생태계와 어업을 해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르불가사리는 유해해양생물로도 지정돼 있다.
인수공통감염병을 전파하는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흰줄숲모기와 이집트숲모기는 말라리아, 뎅기열, 치쿤구니야열, 황열, 지카바이러스 등을 옮겼다.
생물다양성 감소가 곧 경제적 손실이라는 시각도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파르타 다굽타 교수는 2021년 펴낸 '생물다양성의 경제학'에서 "포트폴리오 다양성이 재정적 관점에서 위험과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처럼 생물다양성은 자연의 충격 회복력을 높여 우리가 의존하는 생태계서비스에 대한 위험을 줄인다"라고 주장했다.
외래침입종은 토지·해양 개발에 따른 서식지 훼손, 밀렵과 남획에 의한 개체수 감소, 환경오염, 기후변화와 함께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는 다섯 가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보고서에 따르면 멸종한 생물 가운데 60%가 외래침입종에 영향을 받았고, 16%는 오롯이 외래침입종에 의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했다.
보고서는 야생생물 거래제한, 수입검역과 국경통제 등 '생물안보'를 지킴으로써 외래침입종에 의한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환경부는 '외래생물 관리 종합 대응 매뉴얼'과 '생태계교란생물 현장관리 가이드'를 만들어 상황에 따른 조치를 하고 있다.
환경부는 외래종 '유입 차단'을 최우선 목표로 삼되 이미 유입됐을 경우에는 "생태적 특성과 유입 규모 등을 고려해 공간적인 제어 등 생태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관리 방법"을 쓸 것을 권고했다.
중국과 일본 등 인접국에서 외래종에 의한 피해가 발생한 '관심', 외래종이 일정 지역에 높은 밀도로 발생한 '주의', 외래종에 의한 인체 피해와 생태계 영향이 지속되는 '심각' 등 외래종 대응 수준을 3단계로 나누기도 했다.
작년 12월 열린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를 통해 국제사회가 2030년까지 외래침입종 유입과 정착을 전체적으로 50% 이상 줄이고 섬처럼 취약한 지역에서는 근절한다는 목표를 세운 만큼, 국내에서도 외래종 관리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 관계자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당장에는 외래생물 관리 지침을 개정하거나 관련 국제공조를 강화할 계획이 없다면서도 "올해 말에 (GBF를 반영한)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이 나오면 세부 내용을 정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생태원은 일단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외래생물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울릉도의 경우 조사 주기를 2년에서 1년으로 줄이고, 곤충에 더해 식물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생태계가 외래침입종에 대한 면역력을 가질 수 있도록 건강성을 회복시킬 필요성도 있어 보인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에서 "남의 땅에서 의외의 성공을 거두는 종은 대개 그 땅의 특정 서식지에 마땅히 버티고 있어야 할 종이 쇠약해진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라면서 "토종이 제자리를 당당히 지키고 있는 곳에 쉽사리 뿌리내릴 수 있는 외래종은 거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honk02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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