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종이 온다] ②울릉도가 외래곤충에 '점령'됐다
갈색날개매미충은 밀도 낮아…고양이·쥐도 관찰
고유 식물만 33종…닫힌 생태계 섬, 외래종에 취약
(울릉=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이 정도면 소나무허리노린재가 울릉도 전역에 퍼졌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8일 오전 10시께 울릉도 향목전망대를 향해 산길을 오르던 중 소나무허리노린재 한 마리를 발견한 국립생태원 외래생물팀 이희조 전임연구원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외래곤충은 대체로 인간 활동에 의해 비의도적으로 유입되는데, 섬 서쪽에 위치한 향목전망대는 사람의 왕래가 잦은 저동항, 도동항, 사동항 등 항구와는 맞은편에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 교란종까지는 아니지만 소나무허리노린재는 빨대처럼 생긴 주둥이를 솔방울이나 잣에 꽂아 영양분을 빨아먹는 과정에서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주로 소나무과 식물에 붙어산다. 길쭉한 체형에 몸길이는 16∼20㎜ 정도고 6∼11월 활동한다.
상대적으로 고위도에 위치한 북미가 원산지라 빠르게 한국 생태계에 정착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소나무허리노린재는 실제로 빠르게 세력권을 넓혔다. 2010년 경남 창원시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이제는 전국 어디서든 볼 수 있게 됐다. 울릉도의 경우 2017년 섬 동쪽에 있는 도동항에서 처음 관찰됐다.
국립생태원 연구진이 6∼8일 울릉도 10개 지점에서 '외래생물 현장 조사'를 진행한 결과 4개 지점에서 성충과 약충을 합쳐 소나무허리노린재 40여마리가 관찰됐다.
처음 관찰된 때로부터 5년 만에 울릉도를 '점령'한 것으로 추정되며 키가 큰 소나무나 접근이 어려운 절벽을 낀 숲에서는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으므로 실제 개체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소나무허리노린재와 함께 주요 조사 대상이었던 갈색날개매미충은 조사 지점 10곳 중 2곳에서 성충 20여마리와 알집 30여개가 확인됐다.
산란 흔적은 발견됐지만 분포 범위가 넓지 않고 출현 밀도도 높지 않았다.
다만 육지에서처럼 대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동부 출신인 갈색날개매미충은 국내에서는 2009년 충남과 전북에서 처음 나왔고 이후 전국으로 확산했다. 울릉도에서는 2019년 도동항 근처에서 처음 관찰됐다.
몸길이가 암컷은 7.5∼9.2㎜, 수컷은 7.0∼8.3㎜이고 주로 갈색을 띠지만 암갈색, 녹갈색, 황갈색, 적갈색 개체도 있다.
줄기와 잎에 붙어 즙을 빨아 먹어 과육 생장에 피해를 주고 배설물이 그을음병을 유발해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됐다. 사과나무부터 가죽나무, 산수유나무, 측백나무, 감나무, 밤나무까지 식생을 가리지 않는다.
연구진에 따르면 소나무허리노린재와 갈색날개매미충 외에 국화과 식물에 피해를 주는 외래곤충 해바라기방패벌레도 울릉도 전역에 서식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고양이, 다람쥐, 시궁쥐 등 포유류와 큰산개구리(옛 북방산개구리) 등 양서류는 울릉도 내 먹이사슬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울릉도에 외래생물이 지속해서 들어오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섬은 닫힌 생태계다. 고유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오랜 종 분화 과정을 거친 생물들로 독특한 생태계가 형성된다.
19세기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감을 줬다는 갈라파고스 제도가 그렇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사는 파충류는 바다거북속을 제외하면 모두 고유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윈 핀치'로도 불리는 핀치류도 13종 분포한다.
울릉도는 5천∼250만년 전 형성된 이후로 육지와 연결된 적 없는 섬이다. 면적이 넓지 않고 지형이 험준해 종 분화가 활발하게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여러 고유종이 자생하고 있어 '한국의 갈라파고스'로도 불린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울릉도에 분포하는 식물 494종 가운데 33종(6.7%)이 고유종이다. 고유종 국명에는 대체로 '섬', '우산', '울릉' 등 접두사가 붙었다.
울릉도에는 소나무허리노린재의 '먹잇감'이 될 수 있는 고유종 솔송나무도 살고 있다.
외부 영향을 받지 않고 고유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섬은 외래종 유입에 더 취약하다.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섬에서 발생한 멸종의 90%가 주로 외래종에 의해 발생했다"라며 "도서 지역 4분의 1 이상에서 외래식물이 자생식물보다 많았다"라고 밝혔다.
육지에서 보면 토착종이더라도 울릉도 입장에서는 외래종일 수 있다. 고양이와 쥐가 대표적인 예다.
이 전임연구원은 "울릉도를 하나의 고립된 생태계로 본다면 자생종 외에 육지에 있는 모든 생물을 외래종으로 볼 수 있다"라며 "토착종이더라도 섬에 도입되면 고유 생태계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올해 7월 제주도에서는 외래종인 '노랑알락하늘소'(가칭)가 번식한 점이 확인되기도 했다. 아열대성 곤충인 노랑알락하늘소는 주로 팽나무와 차나무를 갉아 먹는다. 다 자란 애벌레는 나무에 구멍을 뚫고 나온다.
honk02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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