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배터리로 시동 걸린 전기여객기

이재덕 기자 2023. 9.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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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가볍고 출력 성능 높은
kg당 500Wh 밀도 배터리셀
중국 CATL 개발 발표 이후
향후 전기비행기 산업 겨냥한
배터리 업체 혁신 경쟁 촉발
CATL 500Wh 양산 성공 땐
단거리 여객 노선서 실현 가능

지난 4월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닝더스다이)이 ㎏당 500Wh(와트시)의 에너지밀도를 가진 배터리셀을 개발했다고 깜짝 발표하자 업계가 술렁거렸다. ㎏당 250~300Wh 수준인 그동안 전기차 배터리셀 밀도의 1.6~2배에 달하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전기차에 장착된 배터리를 절반으로 줄여도 같은 성능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에너지밀도 500Wh/㎏을 넘는 배터리셀을 만들자며 수년 전 ‘배터리500 컨소시엄’을 구성했을 정도로, 업계에서 ‘500’은 그야말로 꿈의 수치다. CATL이 “그동안 배터리 분야 발전을 가로막았던 한계를 깨고, 높은 안전성과 경량화를 중심으로 한 전동화의 새로운 시나리오가 열릴 것”이라고 말한 건 이 때문이다.

배터리업계가 ‘마의 500’을 넘기려는 건 전기비행기 시장까지 노리기 위해서다. 전기차는 무게보다는 배터리 부피·가격 등에 더 민감하다. 예컨대 최근 전기차업체들이 기존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대신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LFP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비행기는 다르다. 무게가 나갈수록 비행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에너지밀도가 높은 가벼운 배터리셀 개발이 최대 숙원이다.

일찌감치 전기비행기의 사업 가능성을 간파한 것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다. 머스크는 전기비행기용 배터리의 상용화가 이뤄질 경우 테슬라가 전기비행기 생산에 도전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상용화 가능한 전기비행기용 배터리로 그가 제시한 에너지밀도 기준은 ㎏당 400Wh. 머스크는 2020년 자신의 트위터에 “㎏당 400Wh 에너지 밀도를 갖는 배터리의 대량 생산은 머지않았다”며 “아마 3~4년이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3년 뒤 CATL의 발표는 머스크의 기대를 훌쩍 넘겼다. CATL이 충전 주기·속도 등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까닭에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이제 전기비행기 시대가 도래했다는 기대감 섞인 반응이 적잖다. CATL은 “전기여객기를 개발하고 테스트하는 데 파트너사와 협력 중”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중국 CATL이 지난 4월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1㎏당 500Wh(와트시)의 에너지밀도를 갖는 배터리. CATL 제공

지금도 단거리용 전기비행기 개발이 한창이다. 미국의 에어플로베타 테크놀로지, 스웨덴의 하트에어로스페이스 등 스타트업들이 전기비행기 제조산업에 뛰어들었다.

다만 아직까지는 특정 지역 상공을 짧게 선회하는 수준의 초기 단계다. 가장 앞서 나간 전기비행기 업체로 평가받는 업체는 이스라엘의 에비에이션으로, 이 업체의 전기비행기 ‘앨리스’는 2022년 9월 미국 워싱턴 모지스 호수 상공에서 8분간의 시범 비행에 성공했다. 에비에이션에 따르면, 앨리스는 승무원 2명과 승객 9명을 태우고 1100㎏의 화물을 실을 수 있다. 2027년부터 항공사 등에 인도될 예정인데 수주량이 이미 수백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앨리스에 사용된 배터리는 한국의 중소업체인 ‘코캄’이 만든 NCM 배터리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NCM 배터리 등 리튬이온배터리로 인한 비행기 화재 사고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더욱 안정적인 배터리 개발 등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비슷한 일이 전기차 산업에서도 있었다.

2000년대 중반, 당시만 해도 주목받지 못했던 테슬라가 LG화학의 배터리셀 7000개를 배터리팩으로 만들어 경주용 자동차에 장착해 주행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LG화학은 테슬라에 배터리셀을 반납해달라며 서한을 보냈다. LG화학은 해당 실험의 화재 위험이 높기 때문에 연루되는 것을 피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당시 테슬라의 최고기술책임자(CTO)였던 제프리 스트라우벨은 배터리셀 사이를 띄우고 배터리팩 안에 미네랄 혼합물을 넣어 발열이 일어나도 화재로는 번지지 않는 발열 관리 기술을 개발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기차가 2008년 등장한 테슬라의 ‘로드스터’다.

배터리업계는 전기비행기용 배터리에서도 이와 같은 혁신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NCM·LFP 등 리튬이온배터리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인 전해질(유기용제와 리튬염 등의 화합물)의 안정성을 높인 전고체 배터리 개발이 활발하다.

전자를 내보내는 양극재와 전자를 받아들이는 음극재의 소재를 달리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리튬메탈을 음극재로, 황을 양극재로 활용하는 리튬황 배터리는 이론적으로 ㎏당 2000Wh의 에너지 밀도를 갖는다. 리튬을 음극재로, 산소를 양극재로 사용하는 리튬산소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는 이론상 ㎏당 3000Wh에 달한다. 만약 이를 구현할 수 있다면 현재 세계 최장 비행 노선인 미국 뉴저지~싱가포르 노선(1만6700㎞)에 전기비행기를 투입하는 일도 가능해질 수 있다. CATL이 에너지밀도 500Wh/㎏에 달하는 배터리셀을 실제로 생산해낸다면 단거리 항공노선의 전기비행기 시대가 열리게 된다. 단거리 비행기의 연료가 등유에서 전기로 전환되면 탄소 배출량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항공업체들의 국제 모임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 ‘제로(0)’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이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노선 감축’뿐이다. 실제로 프랑스는 단거리 국내선 중에서 대체 철도편이 있는 노선의 운행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지난 5월부터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보르도, 낭크, 리옹을 연결하는 3개 노선이 폐지됐다. 오스트리아도 3시간 미만의 국내선 항공을 금지하기로 했고,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단거리 노선에 일정 수준의 세금을 부과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전기비행기가 실현된다면 이런 틈새부터 파고들 수 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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