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전역 여진 공포로 거리서 뜬눈… ‘앙숙’ 알제리 구호 손길

최영권 2023. 9. 11.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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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흙집’ 튀르키예 지진 판박이

피해지역에 180만명 곳곳 산재
맨해튼보다 인구밀도 높은 곳도
14개 지역 도로 막혀 도움 차질
세계문화유산 손실도 상당한 듯
佛·이스라엘 등 각국 지원 의사

모로코 마라케시 주민들이 규모 6.8의 강진이 엄습한 다음날인 9일 밤에도 광장에서 한뎃잠을 청하고 있다. 마라케시 AFP 연합뉴스

모로코 전역의 시민들은 여진의 공포 때문에 거리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전통시장과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광장과 공터에 모여 잠을 청했다.

로이터통신과 만난 무하마드 아야트 엘하즈(51)는 벽에 금이 가는 등 집이 손상된 흔적을 발견한 뒤 중세의 유서 깊은 고도 메디나 근처 길거리에서 가족과 함께 잠을 청하고 있다. 그는 “붕괴 위험이 있다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대원들이 10일까지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이 집계된 알하우즈주 물라이브라힘의 무너진 건물 안으로 들어가 생존자를 구조하고 있다. 물라이브라힘 AFP 연합뉴스

지진 진앙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45㎞ 떨어진 가난한 시골 마을인 물라이브라힘에 사는 아윱 투다이트는 AP에 “마치 최후의 날처럼 엄청난 흔들림을 느꼈고 10초 만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사망 후 신속하게 시신을 매장하는 이슬람 전통에 따라 이 마을에서는 날이 밝자마자 시신 수백구를 실은 운구 행렬이 공동묘지로 길게 이어졌다.

뉴욕타임스(NYT)가 영국 사우샘프턴대학의 인구 통계 연구소인 ‘월드팝’의 인구 밀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진 피해 지역에는 약 180만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진이 발생한 모로코 남서부 지역 대부분은 인구 밀도가 낮지만, 마라케시 중부의 일부 지역은 뉴욕 맨해튼보다 인구 밀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넬대학의 지질학자인 주디스 허버드에 따르면 이 지역의 복잡한 지각 구조는 지질학계에서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질 구조가 단일하지 않고 워낙 복잡한 데다 판이 움직이는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이다. 미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은 아프리카판 내에서 발생했으며, 아프리카판은 1년에 4~6㎜ 정도 서남서쪽으로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물라이브라힘에 있는 이슬람교 사원인 모스크의 첨탑 ‘미나레트’가 지진으로 커다란 금이 가 있다. 물라이브라힘 AP 연합뉴스

모로코 정부는 이날 성명에서 모로코 군대에 항공기, 헬리콥터 및 병력을 배치하도록 명령했다고 밝혔다. 6개 도로에 대한 접근은 가능해졌지만 다른 14개 지역 도로는 여전히 막혀 있다고 밝혔다. 마라케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옛 시가지 메디나의 문화유산들에 대한 손실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인 ‘마라케시의 지붕’으로 불리는 쿠투비아 모스크의 첨탑(미나레트)도 훼손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사회에서는 모로코 강진 피해에 대한 애도와 지원 의사 표명이 이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상도 나란히 모로코에 대한 연대 의사를 표명했다.

약 7개월 전 5만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대지진을 겪은 튀르키예도 구호 행렬에 동참했다. 이번 지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심야시간에 발생했다는 점, 내진 설계가 적용되지 않은 건물이 많아 인명 피해를 키웠다는 점에서 튀르키예 대지진과도 비견된다. 튀르키예 재난안전관리청(AFAD)은 “모로코 당국이 허용하는 즉시 구호 요원 265명과 텐트 1000동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2년 전 모로코와 국교를 단절한 알제리는 모로코로 향하는 의료진의 이동과 구호 물품 수송을 위해 폐쇄된 영공을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두 나라는 서사하라 영토를 둘러싸고 수십년 동안 분쟁을 벌이고 있다.

3년 전 국교를 정상화한 이스라엘도 구호 의사를 밝혔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필요한 만큼 지진 피해를 입은 모로코를 돕겠다”고 말했다. 2019년 모로코를 방문한 적이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참사로 피해를 입은 모로코 사람들에게 깊은 위로의 뜻을 표했다.

모로코 출신 이주민이 많은 프랑스도 지원을 제안했다. 프랑스 남부의 3개 지역이 모로코에 100만 달러의 원조를 약속했다. 1912년부터 1956년까지 모로코를 보호령으로 통치한 프랑스에는 약 150만명의 모로코인이 체류하고 있다.

모로코 정부는 무함마드 6세 주재로 재난 대책 회의를 연 뒤 사흘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으나 아직 국제사회에 공식 지원 요청을 하지 않은 상태다. 국왕은 처음에 12시간 동안 참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그 뒤로도 군을 통해 중계된 발언만 전하고 있다.

최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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