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자 한명이 봐야할 자료만 1만쪽…인력충원·시스템 개선 시급
새 사건 접수 땐 의결서는 뒤로 밀려
공정위원 전원 날인 시스템도 문제
한명만 자리 비워도 절차 '올스톱'
[세종=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기업들 입장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늑장 의결서’, ‘뒷북 의결서’는 야속하기만 하다. 공정위 제재로 기업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상황에서 의결서 없이는 불복 소송 등 후속 대응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피심인인 기업들은 의결서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죄가 없어도 ‘법 위반 기업’ 낙인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어 속앓이만 할 뿐이다.
앞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하는 재계 의견을 모아 공정위에 전달한 바 있다. 의결서 늑장 송달을 두고 공정위가 기업들을 난처하게 하려는 일종의 ‘갑질’, ‘고의 지연 행위’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공정위는 억울해 한다. 송달 기간을 단축하려 해도 인력·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지체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전원회의 심결이 끝나면 심사보고서를 파악하고 위원들 의견을 정리해 의결서 초안을 써야 하는데, 책상에 놓인 서류만 원본과 첨부 자료를 합쳐 1만 페이지에 달할 때도 있다”면서 “그렇다고 의결서 작성에만 집중할 수도 없다. 다른 사건의 심의를 앞뒀다면 본업인 주심을 보좌하는 역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보니 의결서는 마감 기한을 놓치는 일이 많다”고 털어놨다.
공정위 출신의 전직 관료 A씨는 “공정위 사건 판결의 경우 법원의 민·형사 사건보다 복잡한 경우가 많아 의결서 작성에만 집중해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됐던 사건의 경우 더 많은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의결서 작성을 맡길 만한 인력 자체도 적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쟁점이 많거나 대중의 관심이 높은 대형 사건의 경우 피심인에게 과징금 산정을 위한 보충 자료 등을 요청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추가 자료를 받아 의결서에 관련 내용을 다시 반영하려면 통상 20~30일 가량 더 소요된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올해 1~7월 공정위가 송달한 의결서를 전수조사한 결과 가맹택시 콜(호출) 몰아주기 의혹으로 271억원의 과징금 제재를 받은 카카오모빌리티는 심의종결 후 의결서 송달까지 119일이 소요됐다. 거짓·과장 광고 혐의로 과징금 28억원을 부과받은 테슬라도 심의종결 후 의결서 송달까지 114일이 걸렸다.
이밖에 △이동통신 3사의 통신서비스 속도 관련 부당 광고행위 제재(68일) △대한변호사협회 및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소속 변호사들에 대한 광고제한행위 제재(49일) △중장비용 카메라 업체의 기술유용행위 제재(52일) △입점업체에 가격할인 쿠폰으로 갑질한 G마켓 및 갑질을 요구한 오진상사 제재(48일) 등이 의결서 송달이 늦었다.
기업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공정위의 늑장 의결서로 인해 수 개월간 ‘법 위반 기업’ 낙인으로 이미지가 실추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정위의 제재 처분이 법원 판결에서 뒤집히는 경우도 많다. 공정거래백서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6년간 총 296건의 행정소송 가운데 82건을 전부 또는 일부 패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패소율은 27.7%에 달했다.
국회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이 의결을 의결서로 하도록 한 취지는 기본적으로 피심인 방어권 보장에 있다”며 “언론 브리핑, 보도자료 배포는 법적 효력이 없어 피심인인 기업이 불복할 수 없고 의결서를 송달받기까지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 의결서 송달과 언론 보도 시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도 처음에는 판결 주문만 먼저 선고하고 나중에 판결문을 작성했는데, 인력과 시간이 부족이 원인이었다. 공정위도 같은 이유일 것”이라며 “공정위도 의결서를 갖춘 후 브리핑을 하는 것이 원칙인데 인력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강신우 (yeswh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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