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엄마 시신 옆 굶주린 네살배기는 '미등록 아이'였다
건보료·전기료 미납 등 징후 있었지만 방치
안전망 사각지대 관리한다더니 비극 재연
전북 전주시 빌라에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추정되는 40대 여성이 숨지고 4세 아들이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 가정은 수년째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했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위기 징후를 제때 포착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 아이는 출생신고 없이 태어난 ‘미등록 영아’인데도 얼마 전 정부의 대대적인 전수조사 대상에서도 빠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2020년 ‘방배동 모자’, 2022년 ‘수원 세 모녀’ 사망 사건 등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은 참극이 또 반복됐다.
비극의 전조 있었는데…
1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틀 전인 8일 오전 9시 55분쯤 전주시 완산구 한 빌라에서 여성 A(40)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정확한 사망 시점을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패한 시신 옆엔 B(4)군이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세입자가 며칠째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집주인 신고로 현장에 출동해 이들을 발견했다. 아들은 오랜 기간 음식을 먹지 못한 듯 쇠약한 상태였으나 병원에서 치료받고 현재는 의식을 되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8년 전 이혼해 혼자 아이와 반려견을 키우며 생활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로선 B군의 친부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 경찰은 A씨와의 DNA 대조 검사를 통해 친자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외상 등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부검 뒤 정확한 사인이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A씨 가정은 기초수급이나 차상위계층은 아니었다. 그러나 극심한 생활고를 겪은 흔적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전주시 등에 따르면 A씨는 2, 3년 전부터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했고, 올해 7월부터는 전기요금 등 각종 공과금도 밀렸다. 본보가 이날 찾은 빌라 우편함엔 20만 원 넘는 전기요금 체납 영수증과 건강보험료 고지서가 우편함에 꽂혀 있었다. 문 앞에는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기저귀 박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망 당시 집 안 곳곳엔 쓰레기와 각종 잡동사니가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인근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그 빌라는 보증금 200, 300만 원에 월 30만 원 전후로 저렴한 측에 속하는 곳”이라고 했다.
정부 복지망 또 '구멍'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료 체납, 단전, 단수 등 39가지 위기징후 정보를 입수해 500만 명의 명단을 지자체에 제공하고, 이 중 20만 명 정도를 추린 위기 가구 조사대상자를 지자체에 통보한다. 그러나 A씨 가정의 사정을 전주시가 알아챈 건 올해 7월이다. 전주시는 지난달 15일 전화로 처음 A씨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같은 달 24일 사회복지사가 A씨 집을 직접 방문했지만 부재중이라 돌아갔다. A씨 집주인이 지난 3일 고인을 만났다고 증언한 점으로 미뤄 볼 때 사회복지사가 찾아갔을 땐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극의 전조’가 오래전부터 엿보였지만 확인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정부는 건강보험료 미납만으로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고 해명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사회보장정보원 관계자는 “2021년부터 건강보험료와 가스비 등 체납 정보가 있어 지자체에 통보됐지만, 지난해 수익이 발생해 명단에서 제외됐다가 올해 7월 다시 발굴된 사례”라고 했다. 이어 “사회복지 공무원의 인력 한계상 각 지자체에 너무 많은 명단을 내려보낼 수 없다”며 “위험도가 높은 순서로 일정 인원을 각 지자체에 통보한다”고 덧붙였다.
'병원 밖 출산' 사각지대
B군이 정부 전수조사에도 드러나지 않았던 ‘미등록 영아’였다는 점도 경위 파악이 필요해 보인다.
정부는 6월 28일부터 7월 7일까지 2015~2022년 의료기관에서 출생했지만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2,123명을 대대적으로 전수 조사했다. 그러나 B군은 이 조사 명단에 들어 있지 않았고, 이번 사건을 통해서야 존재가 처음 드러났다. 수사ㆍ보건 당국은 ‘병원 밖 출산’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지난 6월 미등록 영아 문제가 큰 논란이 되면서 정부는 각종 대책을 쏟아냈다. 내년부터 시행될 출생통보제(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통보)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의료기관에 가지 않고 자택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는 막을 방법이 없다는 우려가 진작 나왔다. 이번 사건으로 ‘병원 밖 출산’의 사각지대가 드러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경찰의 DNA 대조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출생 미신고 경위 등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슷한 비극이 되풀이될 때마다 정부와 지자체는 ‘찾아가는 복지’를 다짐하지만 우리 사회의 안전망은 여전히 성글기만 한 게 현실이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임신부터 출산까지 임부를 대상으로 한 상담 등 지원 체계를 촘촘히 갖춰 자연스럽게 출생신고를 유도하고, 빈곤 가정은 조기 발견하는 체계도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주=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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