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선동한 이재명과 86그룹, 한국 정치사상 지적 능력 가장 떨어져”
“여기가 보수의 심장이군요”라고 민경우는 말했다. 골수 주사파였던 그는 조선일보가 신기한 듯 연신 두리번거렸다. “젊을 때 형성된 생각의 원형은 쉽게 바뀌지 않아요. 새로운 지식, 경험을 통해 사람이 변한다고요? 개뿔입니다.” 한미 FTA 반대와 광우병 시위 주동자로 후쿠시마 괴담의 허구를 설파해 온 그이지만, 여전히 자기 검열에 시달린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나쁘다, 검찰은 악이다처럼 무의식 중에 학습된 판타지를 깨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아직도 ‘전대협 진군가’를 들으면 울컥하니까요.” 그는 지난 8월 15일 주대환, 함운경과 함께 ‘586 설거지론’을 주창하며 ‘민주화 운동 동지회’를 출범시켰다.
◇후쿠시마 괴담… 反윤석열 위한 미끼
-2008년 광우병 시위 때 사실 검증은 없었다고 폭로한 것이 후쿠시마 괴담의 확산을 막는 데 기여했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캠프 데이비드 합의 등 한·미·일 군사 협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민주당과 시민 단체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약한 고리로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한·미·일 군사 협력 기조가 옳다고 판단하면서 선동에 휩쓸리지 않았다. 여기에 광우병 학습 효과로 국민이 민주당이 아닌 과학자들의 말을 신뢰한 결과다.”
-광우병 시위대의 관심은 오로지 이명박 퇴진이었다고 했다.
“후쿠시마도 마찬가지다. 오염 처리수의 과학적 진실 여부는 그들의 관심이 아니다. 오로지 윤석열을 반대하고 이재명의 사법 처리를 막는 게 목적이었다.”
-당시 광우병의 진실에 조금도 의구심을 갖지 않았나?
“여러 명의 전문가에게 광우병의 존재를 물어봤다. 아무도 관심이 없더라. 당연히 토론도 없었다. 술자리에서 방송사 PD와 교수가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을 뿐이다. 소들이 픽픽 쓰러지는 영상을 보여주면 국민들이 충격을 받을 거라고. 광우병은 그저 미끼에 불과했다.”
-그때는 국민들이 왜 휩쓸렸을까?
“광우병을 아는 과학자가 별로 없었고, 안다고 해도 시민사회가 거세게 압박하니 발언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괴담은 원자력 싸움의 경험이 있는 과학자들이 적극 나서줘 막을 수 있었다.”
◇주사파 최대 프로젝트 ‘이승만 죽이기’
-FTA와 광우병 사태를 겪으며 운동권에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FTA가 체결되면 미국 식민지로 전락하는 줄 알았다. 오로지 반미(反美)가 목적인 주사파는 상대가 미국이라서 투쟁한 것뿐이었다. 그즈음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일본 반도체 기업의 영업이익 전부를 합친 것보다 크다는 보고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삼성은 매판자본이 아니었다.”
-21세기에 한국이 식민지라는 생각을 했다는 건가?
“의심하기 시작한 건 90년대 서태지와 룰라가 나왔을 때부터다(웃음). 그러나 인정하지 않았다. 식민지를 부정하는 순간 주사파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니까.”
-’진보의 재구성’이란 책이 그 무렵 나왔다.
“내가 20년 활동해 온 주사파가 틀렸다는 첫 선언이었다.
-주사파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나?
“나를 비롯한 80년대 학생운동가들은 독립운동처럼 혁명을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던 노래가 독립군가다. 조국이 ‘죽창가’ 운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연설은 또 얼마나 장엄하고 비장한가. ‘영원한~’ ‘인간 해방’ ‘끝장내자’ 같은 감성적이고도 격렬한 단어들. 그땐 혁명 이외의 삶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주사파를 우습게 보는 건 기독교를 우습게 보는 것과 같다고도 했다.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 같은 사상이 아니라 종교에 가깝다. 책이 아니고 노래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일체감을 조성한다. 지식인의 합리주의는 무력하다. 몇 글자 책으로 세상이 바뀔 거라고 보는 건 운동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다. 트럼프의 포퓰리즘이 얼마나 위력적인가. 주사파는 대중의 가슴을 자극하는 판타지를 심는다.”
-주사파는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운 나라’라는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고 썼더라.
“한국 사회 모든 악의 근원은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않은 것이라는 게 ‘해전사’의 핵심이다. 이를 토대로 주사파는 80년대 중반 이승만을 깎아내리기 위한 대항마로 김구를 띄우기 시작했다.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는 거부감을 줄 수 있으니, 김구를 대안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북한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김구의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단독정부는 안 된다’고 한 말을 이용했다. 주사파 역사상 가장 성공한 프로젝트였다.”
◇86세대의 신화 만들기
-’86세대의 민주주의’란 책에서 87년 6월 항쟁이 많은 부분 과장되었다고 했다.
“영화 ‘1987′은 학생운동을 신화로 만들기 위해 선악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순수한 학생운동이란 없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비롯해 인문대·사회대·자연대 학생회장이 다 주사파였다. 87년 배경의 드라마 ‘설강화’가 북에서 지령을 받는 대학생이란 설정으로 역사 왜곡 논란이 있었는데, 내가 웃었다. 당시 주사파 운동권은 ‘한민전’이라는 북한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시위의 방향을 정하고 조직했다.”
-6월 항쟁의 진짜 주역은 김영삼의 민추협이지 학생운동이 아니라고도 썼다.
“학생운동이 직선제와 호헌 철폐를 외친 건 87년 4월~6월 두 달 정도다. 그 전엔 줄곧 반미(反美)를 외쳤는데 이게 안 먹히자 구호를 바꾼 거다. 오히려 김영삼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가 판세를 좌우했다. 6월 24일 김영삼이 전두환과 마지막 담판을 하면서 직선제가 아니면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한 것이 6·29의 기폭제였다.”
-김영삼이 저평가됐다는 뜻인가.
“86세대가 스스로를 신화로 만들기 위해 김영삼을 희화화했다.”
-신영복도 터무니없이 우상화된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통혁당 사건의 주모자들은 60년대 초반 서울대 상대에 있었던 몽상가들이다. 그런데 80년대 주사파들이 마치 그가 운동의 적자인 것처럼 신화를 썼고, 대통령이 된 문재인이 신영복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면서 또 한번 판타지를 만든다. 그러나 신영복에겐 이렇다 할 사상이 없었다. 문익환, 백기완처럼 운동의 한복판에 있지도 않았다. 고상한 인문학적 글쓰기로 포장된 사람일 뿐이다.”
-학생운동이 아니어도 민주화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도 했다.
“베이비붐 세대라는 인구 집단과 경제 성장이 맞물리면서 민주화로 갈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가 작동했다는 뜻이다. 80년대 학생운동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이를 부풀리고 정치적으로 이용한 세력이 역사를 퇴행시켰다.”
-문재인 정치 그룹이 가장 위험하다고 했더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엔 그래도 엘리트 집단이 포진해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80년대 몽상에 사로잡힌 운동권이 장악했다. 문 대통령의 ‘능라도 연설’을 들으며 깜짝 놀랐다. ‘민족 자주’ ‘남쪽 대통령’ 같은 80년대 운동권 용어들이 그대로 들어 있다. 세계는 AI 혁명으로 가는데 문 정권은 검찰 독재, 역사 청산으로 퇴행했다. ‘짱깨주의의 탄생’ 등 70~80년대 사고의 원형에 갇혀 있는 그가 추천하는 황당무계한 책들을 보라.”
-86세대는 시위만 했지 공부는 안 했다는 지적에 동감하나.
“나는 문재인에 이어 현재 이재명 주위에 있는 그룹이 한국 정치사상 지적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김대중과 노무현의 이미지를 팔아먹으며, 과격한 발언들로 존재감을 과시할 뿐이다. 민주당은 처럼회, 개딸들과 결별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조국보다 위험한 사람들
-그런데 지지자들은 왜 여전히 많을까.
“정책 경쟁보다는 무의식의 싸움이라고 본다. 민주화 세대가 만들어낸 80년대 판타지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윤석열 대통령도 86세대 아닌가?
“윤석열의 문화적 원형은 80년대 중반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있다. 대선 후보 시절 학생운동의 상징인 함운경을 찾아가지 않았나. 그러나 윤석열이 이념에 편향되지 않고 균형을 잡게 된 건 아버지 윤기중 교수의 영향이었다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이 자유주의 시장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을 ‘인생의 책’으로 꼽는 이유다. 부모의 영향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북 출신으로 동대문에서 장사를 하신 부모님은 민경우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나?
“강한 생존력. 아들이 학생운동 하다 감옥에 가는 걸 걱정하면서도 쿨하게 받아들이셨다. 이북에선 흔히 보던 풍경이라(웃음).”
-서울대 의예과로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국사학과로 다시 들어가 실망이 크셨겠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왜 의대를 그만둔 거냐’ 원망하시더라.”
-왜 국사학과였나.
“초등학교 때 라디오로 들은 월남 패망 뉴스, 선생님이 들려주던 4·19혁명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다. 의대가 싫었다기보다 역사, 철학 공부를 하고 싶었다.”
-운동권과 결별 후 수학 강사가 됐다.
“학창 시절 수학을 제일 잘했다. 국보법으로 감옥에 두 차례 구속돼 있을 때도 수학 문제를 풀었다(웃음). 교육 혁신 기업을 하고 싶었는데 사업 수완이 없어서 망했다. 공부 머리와 사업 머리는 전혀 다른 것 같다.”
-’민주화운동동지회’를 결성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초래한 반(反)대한민국적 역사 인식부터 설거지하자는 뜻에 공감하는 분들이 모였고, 500여 명이 동참했다. 내가 우파로 돌아선 건 조국보다도 조국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조국은 한 치의 잘못도 없고 검찰이 엮은 것이란 말에 충격을 받았다. 한명숙 정치자금 수수, 김경수 드루킹 사건도 반성하지 않더라. 그들은 더 이상 민주 세력이 아니었다.”
-조국은 ‘차라리 날 남산에 끌고 가 고문하라’고 했던데.
“내 가까운 친구는 거리 싸움을 나간 적도, 화염병을 던져본 적도 없는데 자기가 민주 투사였다는 망상에 빠져 그 시절을 묘사하며 분노한다. 86세대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많다.”
☞민경우
1965년 서울 출생. 서울대 의예과를 다니다 중퇴, 국사학과에 재입학했다. 인문대 학생회장,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지내며 국보법 위반으로 두 차례 구속됐다. 한미 FTA 반대 운동본부 정책팀장으로 광우병 시위를 주도했다. ‘진보의 재구성’ ‘86세대 민주주의’ 등을 펴냈고, 현재는 수학 강사로 일하며 ‘미래대안행동’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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