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베트남, ‘포괄적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 美언론 “中 포위망 구축”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각) 베트남을 국빈 방문해 베트남 권력 서열 1위인 응우옌푸쫑 공산당 서기장과 회담을 갖고 첨단기술과 안보 등에서 전방위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방문으로 양국 관계는 최고 수준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다고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이 보도했다. 양국이 지난 10년간 ‘포괄적 동반자’ 외교 관계에서 통상 수년이 더 걸리는 ‘전략적 동반자’ 구축 과정을 건너뛰고 한 번에 2단계를 높인다는 뜻이다. 반세기 전 베트남전에서 서로 총구를 겨눴던 두 나라가 급속히 밀착하는 모습에 미 언론들은 “반중 정서가 강한 베트남을 거점으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이 결실을 거둔 것”이라며 “오커스(AUKUS·호주, 영국, 미국) 및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등 안보 협의체를 통해 대중 견제 체제를 구축한 미국이 동남아 지역에서도 ‘대중국 포위망’을 형성하게 됐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일부터 이날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진행된 G20(20국)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뒤 1박 2일 일정으로 베트남을 찾았다. 이날 오후 쫑 서기장과 회담한 바이든 대통령은 11일에는 팜민찐 베트남 총리와 만난 뒤 보반트엉 국가주석과의 국빈 오찬에 참석한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구글, 인텔, 앰코테크놀로지, 보잉 등 미국의 주요 반도체·테크 기업들의 고위 관계자들과 함께 11일 열리는 비즈니스 회의에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양국 간 반도체 및 인공지능(AI) 협력을 비롯해 전반적인 공급망 대책도 논의할 예정이다.
오랜 적대국이던 두 나라 관계를 ‘밀월’로 이끈 것은 중국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안보 강화를 꾀하는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 베트남은 동남아의 ‘제1 요충지’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여왔다. 이번 회담 실무를 주도한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2021년 11월 싱크탱크 미국평화연구소(USIP) 대담에서 “베트남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라고 했다. 스윙 스테이트는 대선에서 표심이 고정되지 않아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경합주(州)를 뜻한다. 베트남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제어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베트남 또한 남중국해를 두고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어 반중 정서가 강하다.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도발이 거세질수록 미·베트남이 상호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만 베트남은 같은 공산 국가인 중국과 정치적 연대를 유지하면서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왔다. 특히 지난 3월 친중파인 트엉 공산당 상임서기가 주석(서열 2위)으로 선출되면서 친중으로 분류되는 쫑 서기장을 비롯해 찐 총리(3위), 브엉딘후에 국회의장(4위) 등 이른바 ‘빅4′가 베트남을 ‘친중 국가’로 이끌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미 싱크탱크 대니얼 이노우에 아시아·태평양 안보연구센터의 알렉산더 부빙 교수는 “(이번 바이든 방문은) 미국이 동남아 지역의 많은 중요한 국가들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으로 큰 외교적 승리”라고 했다.
이번 회담을 통해 양국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관계를 격상하기로 한 것도 이례적이다. ‘비동맹’을 표방해온 베트남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나라는 한국·중국·러시아·인도 등 4국에 불과하다. 앞서 미·베트남은 1975년 베트남 공산화 이후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가 1995년 7월 국교를 정상화한 데 이어 2013년 7월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미 언론들은 “양자 관계 격상에는 통상 수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단계 격상은 ‘외교적 파격’”이라고 전했다.
베트남은 바이든 대통령 방문 이후로도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전략을 추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NYT는 베트남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도 러시아와 비밀리에 80억달러(약 10조7000억원) 규모 무기 구매 협상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당초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 방문을 계기로 미국 무기 판매를 늘려 베트남의 최대 무기 공급국인 러시아의 의존도를 낮추려는 계획이었지만, 이 같은 구상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유엔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판하는 것을 거부했고,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러시아의 자격 정지 투표에서도 반대표를 던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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