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집권 1년前 앉은 자리, 딸 김주애가 앉았다
북한 김정은이 정권 수립일(9·9절) 75주년인 지난 9일 열병식에서 딸 김주애를 자신의 바로 옆자리인 주석단 특별석에 앉혔다. 북한군 원수(5성급)인 박정천 군정지도부장은 김주애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귓속말을 했다. 외교가에서는 “장남 등 진짜 후계자는 따로 있을 것”이라는 신중론이 여전하지만 최근 공개 석상에서 김주애의 높아진 위상이 계속 확인되자 “김주애가 후계 수업에 들어갔다”는 분석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북한은 지난 9일 0시부터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했다. 북한의 열병식은 건군절(2월 8일)과 전승절(6·25전쟁 정전 협정 기념일·7월 27일)에 이어 올해에만 세 번째다. 1년에 세 차례나 열병식을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는 참석자를 언급하면서 김주애에 대해선 “존경하는 자제분”이라고 소개했다. 김주애는 이날 열병식 주석단에서 귀빈석이 아니라 맨 앞쪽 특별단, 그 가운데서도 김정은 바로 오른쪽 옆 좌석에 앉았다. 올 초 축구 경기장 등에서 김주애가 김정은 옆에 앉은 적은 있지만, 최대 정치·군사 행사인 열병식에서 이 같은 모습이 연출된 것으로 처음이다. 김주애는 지난 2월 건군절 열병식 때는 김정은 뒤편 귀빈석에 어머니 리설주와 당 비서들과 함께 있었다. 7개월 만에 권좌 바로 옆으로 옮겨 앉아 아버지 곁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는 듯한 모습이 대내외 북한 매체에 보도된 것이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도 집권 1년 전인 2010년 열병식 주석단에서 그의 아버지 김정일의 오른편에 리영호(군 총참모장)만 사이에 두고 앉은 모습을 보이며 후계자로서의 위상을 드러냈었다”고 말했다. 이번 김주애의 주석단 배치도 김정은의 의중이 반영된 정치적 메시지라는 것이다.
10일 공개된 조선중앙TV 녹화방송에서는 박정천이 김주애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귓속말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박정천은 지난해 12월 군 서열 1위인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었다가 해임·강등됐다가 최근 다시 군 최고 계급인 원수 계급장을 달고 복귀한 김정은 최측근이자 군 핵심 인사다. 김주애는 이 5성 장군이 무릎을 꿇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목례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내밀어 웃는 얼굴로 귓속 보고를 들었다. 김주애는 김정은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올해 열 살로 추정되는 김주애가 후계 수업을 받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김주애가 훗날에 대비한 후계자 훈련을 받고 있다는 정황이 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김주애가 장녀가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국정원은 2017년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는 “김정은에게는 2010년생 첫째 아들과 2013년생 딸, 2017년생 성별 미확인 자녀가 있다”고 했지만, 지난 3월에는 “장남 존재 정황은 있지만 명확하게 확인되지는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한편, 북한은 이날 열병식에서 정규군이 아닌 예비군 격인 ‘노농적위군’을 대거 동원해 종전 열병식과는 다른 모습을 연출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 무기도 내놓지 않았고 대신 트랙터나 트럭 같은 ‘생활·노동’ 장비들을 주로 등장시켰다. 열병식에 나온 트럭 컨테이너에는 방사포가 장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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