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지역 젊은이도 고개 젓는 ‘부산=제2 도시’
동원 가능 모든 수단 활용, 2030 청년에 희망 주는 게 기성세대가 꼭 해야 할 일
여름철이 되면 현재 근무 중인 세종에 거주하는 지인들과 이따금 휴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화제가 어디에서 알찬 시간을 보내고 싶으냐로 흘러가면 부산에 가고 싶다는 사람이 꽤 많다. 이들 가운데 열이면 아홉은 해운대나 광안리해수욕장에서 더위를 식히고 싶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회 한 접시 먹고 싶다는 것을 이유로 든다. 더러는 부산에 오래 산 사람도 잘 모르는 지역 명소나 맛집까지 입에 올린다. 요즘에야 정보 습득이 워낙 쉬우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이런 말을 듣다 보면 이유야 무엇이건 간에 부산이 그만큼 매력 있는 곳이 분명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도 서부 경남의 소도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낼 때 부산은 감히 지방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곳이었다는 기억이 난다. 서울은 워낙 멀었던 까닭에 제대로 된 도시의 기운을 느끼기에는 부산만 한 곳이 없었다. 지역에서 공부를 좀 하던 형이나 누나들은 서울로 올라갈 여건이 안 되면 부산의 대학으로 진학했다. 일자리도 많았었다고 들었다. 가정 형편으로 일찍부터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이들은 그나마 고향과 가까운 부산을 선택했다. 부산이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까닭이기도 할 터다.
이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은 이유는 얼마 전 국제신문이 부산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어렴풋이 짐작은 했으나, 사실이 되지를 않기를 내심 바랐던 응답이 나온 까닭이다. 창간 76주년을 맞아 ㈜도시와공간연구소에 의뢰해 부산에 사는 20·30대에게 ‘귀하가 생각하는 국내 제2의 도시는 어디냐’고 물었더니 74.4%만이 부산이라고 답했다. 11.3%와 8.9%는 경기와 인천을 각각 선택했다. 대구와 광주를 거론한 이들도 있었다.
74.4%라는 비율은 절대 낮지 않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청년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부산이 우리나라의 두 번째 도시가 아니라고 여긴다는 뜻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쉽게 넘길 사안이 아닌 것만도 분명하다. 그래서 취재진 역시 40대 이상에서는 당연시됐던 ‘부산=제2의 도시’ 공식이 2030세대에서는 조금씩 흔들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어 부산 출신으로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또래 나이를 포함하면 이 같은 응답 비율이 훨씬 높을뿐더러 이런 생각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젊은이들이 부산의 위상을 이처럼 진단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최근 정부 기관 등에서 나온 각종 지표를 보면 부산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를 한눈에 짐작할 수 있다. 우선 인구다. 부산의 주민등록 인구는 8월 말을 기준으로 할 때 330만2749명으로 전월(330만5052명)보다 2312명이 줄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1만4134명으로 연간 기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출생률 감소와 외부 인구 유출 추세를 고려할 때 올해 4분기에는 인구가 330만 명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 예상이 들어맞는다면 2020년 9월에 340만 명대가 무너진 이후 3년 만에 10만 명이 또 줄어드는 셈이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2022년을 기준으로 할 때 이 인구는 225만9000명으로 집계됐다. 2021년의 230만7000명보다 2.1% 적다. 감소율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위였다. 또 지난해 부산 전체 인구에서 생산가능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68.7%였다. 10년 전인 2012년(75.0%)에 비하면 6.3%포인트 떨어졌다. 이 분야의 감소 폭도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게다가 0~34세 아동 청소년 청년 인구 비율은 45.39%로 17개 시·도 중 14위에 그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부산을 떠나는 젊은 층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출생률 감소는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이며 청년의 수도권 유입 증가 역시 어제오늘 불거진 게 아닌데 지나친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냐고 말을 할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부산의 부정적인 부분만 자꾸 거론하는 것 역시 스스로를 비하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항변할 만도 하다. 일면 이런 지적에는 타당성이 있다. 게다가 현재로서는 당장 눈에 띌 만한 성과를 거둘 만한 대안을 내놓기도 힘들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틀에 박힌 말로 들릴 터이지만 시는 행정기관 차원에서, 지역사회는 민간 분야에서 부산을 살릴 방법을 모조리 동원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부산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역의 미래를 끌어 나가야 할 2030세대마저 “부산이 무슨 얼어 죽을 제2의 도시냐”며 혀를 찬다는 데, 기성세대가 나 몰라라며 편하게 발 뻗고 잠을 자서야 되겠는가.
염창현 세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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