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학교공동체를 건강하게 살려내는 게 우선이다

김대성 전 부산시 북부교육지원청 교육장·교육학박사 2023. 9.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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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 전 부산시 북부교육지원청 교육장·교육학박사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크나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부산에서도 2021년 여름, 임용된 지 1년 반밖에 되지 않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수업 시간에 욕설한 학생을 복도로 내보내고 또 반성문을 쓰게 했다는 것이 학부모가 제기한 문제였다.

이러한 사건에서 그려지는 선생님들은 사방을 둘러보아도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아프리카 세렝게티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이다. 선생님이 기댈 수 있게 어깨 한쪽을 내어주는 이 없는 이런 황량한 교육 환경에서 선생님들은 고립된 채 의기소침해진다. 그래서 학생들이 장난이라고 발뺌하는 폭력 등에 소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외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러한 기저에는 간간이 악용돼 온 ‘아동학대’와 잘못 인식된 ‘학생인권’에 혹시라도 저촉돼 고발되지나 않을까 하는 심리가 작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학교공동체가 붕괴하고 교실이 무너지며 학생이 배움으로부터 도피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래도 교육자로서의 본능으로 역할을 하다가 자칫 잘못되면 선생님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그러다 극한에 몰리면 그 문제의 책임이 마치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삶마저 포기하는 것이다.

필자가 두 학교의 교장으로 근무하면서 관심을 가진 것은 ‘생활지도 규정’이었다. 부임한 학교마다 세밀하게 규정돼 있었으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학생들도 잘 모르고, 심지어 담당교사마저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규정을 꺼내놓고 어떻게 적용할지를 찾아보는 정도였다. 그래서 학생회가 주축(고등학교이기에 가능)이 돼 생활지도 규정을 ‘학생의 학교생활 규정’으로 개정했다. 여기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곳은 학년부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학년담임 전원을 위원으로 해 구성된 ‘학년생활위원회’였다.

여기에서는 동 학년공동체로서 학생들을 올바른 생활방법으로 계도하며, 사안에 따라 징계 회부 여부를 심의하는 기능을 가졌는데, 이 위원회에서는 학급담임으로부터 사안에 대한 설명과 의견을 청취했으며 학생과 학부모에게도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부여했다. 이와 함께 ‘학교 정책결정에 따른 규정’에 ‘학년교과협의회’를 매달 실시할 수 있게 함으로써 동 학년 학생들의 수업과 생활 태도에 다양한 의견을 나누면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방해하는 학생들에 대한 지도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선생님의 문제를 동료 선생님과 공유함으로써 학생 간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갈등을 중재할 수 있었고, 폭력성을 보이는 학생은 학교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계도할 수 있었으며, 학부모에게도 ‘내 자녀’가 아니라 ‘우리들의 자녀’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설득할 수 있었다.

어떠한 조직이든 인간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인간적 관계가 주로 정서와 가치에 기반을 두고 개인과 개인 간의 심리적 연결을 통해 더욱 깊고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면, 사회적 관계는 주로 행동과 규범에 기반을 두어 개인과 집단 간의 구조적 연결을 통해 더욱 넓고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서는 학교라는 사회는 인간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통해 학생 교직원 학부모가 함께 학교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학교 규정도 학교공동체의 주요 주체가 머리를 맞대는 논의과정을 거쳐 누구나 인지하기 쉽게 정비함으로써 구조적 연결을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안정된 학교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 교육부가 내놓은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은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학부모의 악성 민원은 학교 민원대응팀을 가동하는 것인데, 이러한 조치가 사회적 관계 측면으로 강조하게 되면 학교의 교육적 기능보다는 행정적 기능만이 우선돼 교육 주체의 고립 문제는 본질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소지품 분리보관, 훈육 시 교실 밖 분리방법, 담임교사의 학급생활 규정 등을 안내하는 구체적 해설서는 학교경영 역량마저 저하시켜 학교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그 누구도 이 황량한 벌판에서 혼자 고립되지 않도록 학교자율에 기반한 학교공동체를 건강하게 살려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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