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아보카도와 개똥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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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플랜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플랜테리어(Planterior)는 식물(Plant)과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로 실내를 식물이나 조화, 식물 포스터로 꾸미는 인테리어의 한 방법입니다.
계단참에 내놓고 서너 달이 지난 한여름에 아보카도 화분에서 새싹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플랜테리어라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소박한 반려 식물, 아보카도와 개똥참외가 있어 부지런히 물 주고 살피며 한여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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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플랜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플랜테리어(Planterior)는 식물(Plant)과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로 실내를 식물이나 조화, 식물 포스터로 꾸미는 인테리어의 한 방법입니다. 키우기 쉬운 다육 식물과 흙 없이 키우는 에어 플랜트, 햇빛이 적은 실내에서도 잘 자라는 관엽식물이 꾸준히 사랑받는 인테리어용 식물입니다. 플랜테리어에는 인테리어 효과 외에도 환경 정화와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바깥 활동이 어려웠던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실내에서 지내는 갑갑함과 고립감을 초록 식물을 키우고 바라보는 데서 해소하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던 어느 날, 마트에서 후숙이 잘 된 아보카도 몇 개를 사 왔습니다. 아보카도에 명란을 곁들여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자줏빛으로 잘 익은 타원형의 아보카도를 반으로 가르자 호두 크기만 한 동그란 씨앗이 손바닥에 남았습니다.
매끈하면서도 동글동글한 모양새가 귀여워 한참을 들여다보려니 버리기 아까운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아보카도의 사방으로 가벼운 칼집을 넣고 이쑤시개를 꽂은 후 물을 채운 물컵에 걸치듯 담가 볕이 좋은 창가에 내놓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샬레에서 발아시켰던 강낭콩을 떠올리며 못내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한 달을 보냈을 때쯤 드디어 하얀 뿌리와 싹이 위아래로 빼꼼히 모습을 보였습니다. 흙이 담긴 화분으로 옮겨 심자 줄기를 뻗어내며 씩씩하게 자라기 시작했고 두어 번의 화분 갈이를 통해 이파리가 푸르른 멋진 아보카도 나무로 자랐습니다. 그렇게 아보카도 나무는 제게 단 하나뿐인 반려 식물이 되었습니다. 가까이서 자주 보고 싶어 화분을 작업실까지 가져다 놓고 물을 주며 수시로 말을 걸었습니다. ‘나는 너로 하여 기쁠 것 같아. 잘 자라 기쁠 것 같아.’(시 ‘배추의 마음’, 나희덕)
반려견 반려묘도 아니고 식물에까지 반려라는 말을 붙이는 건 오버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식물이 가진 푸른 생명성에서 얻는 위로와 위안도 분명히 있기에 알뜰히 살피며 마음을 쓰게 됩니다. 여름에는 볕과 바람이 좋은 뜰에 내놓고 생장의 기쁨을 누리며, 찬 바람을 피해 거실에 들인 겨울에는 혹여 줄기와 뿌리가 얼지 않을까 염려하며 어렵고 고단한 시기를 견디는 이의 자세도 생각해 봅니다. 생장에는 성장과 성숙이 함께 합니다. 일정한 생장의 시기를 거치며 성장하고 성숙하는 닮은 점으로 우리는 반려 식물이 건네는 초록 메시지에서 힘과 기운을 얻습니다.
계단참에 내놓고 서너 달이 지난 한여름에 아보카도 화분에서 새싹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심은 적은 없으니 어디서 날아온 씨앗이겠지요. 초록 쌍떡잎이 신기하고 대견해 며칠 두었더니 어린 호박잎 비슷한 이파리 몇 개가 쑥쑥 올라왔습니다. 까슬까슬한 촉감이 박과의 넝쿨 식물 같기도 했습니다. 푸른 침입자는 아보카도 화분을 장악하며 자라더니 마침내 작고 노란 꽃까지 피웠습니다. 곁방살이가 못마땅했지만 꽃까지 피워 올리니 일단 이름이나 알자 싶어 사진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촌스러우면서도 정겨운 그 이름, 개똥참외. 심지 않고 들이나 길에서 저절로 생겨난 참외를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저는 그만 웃어 버렸습니다. 제 할 일을 제대로 한 개똥참외를 어찌 내치겠어요. 아보카도와 같이 키울 수밖에요.
‘배추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속은 점점 순결한 잎으로 차오르는/ 배추의 마음이 뭐가 다를까/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들었나 보다.’(시 ‘배추의 마음’, 나희덕)
씨앗부터 애써 키웠든 날아와 스스로 뿌리내렸든 흙이 있어 자라는 식물에는 우선순위가 없습니다. 차별하며 가치를 매긴 제 생각이 잘못된 거지요. 개똥참외의 풀물이 어느새 제 소매에도 들었나 봅니다. 플랜테리어라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소박한 반려 식물, 아보카도와 개똥참외가 있어 부지런히 물 주고 살피며 한여름을 보냈습니다. 그 푸르름으로 올여름은 한결 시원했고 몹시 싱그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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