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찾아와 “무릎 꿇고 사과하라”...숨진 교사가 쓴 ‘교권 침해 기록’엔
대전에서 숨진 40대 초등학교 A교사가 생전에 쓴 교권 침해 기록이 10일 공개됐다. 2019~2022년 아동 학대 신고와 악성 민원으로 고통받은 내용을 적었다. 대전교사노조는 이날 “지난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이후 A교사가 본인 사례를 제보했다”고 밝혔다.
주변 교사 증언과 해당 기록에 따르면 A교사는 2019년 친구를 때리거나 수업 중 소리를 지르는 등 문제 행동을 반복하는 학생 4명을 지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교무실로 찾아와 A교사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다. 한 학부모는 A교사를 아동 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학생을 공개적으로 지도한 것이 정신적 학대라는 주장이었다. A교사는 이듬해 ‘무혐의’ 처분을 받는 동안 속앓이를 했다.
무혐의가 나왔는데도 악성 민원은 이어졌다. 학부모들은 “A교사와 자녀들이 같은 층 복도를 쓰고 있다”며 학교 측에 A교사 근무 위치를 바꿔달라고 했다. 교사 유족들은 “(고인이) 집 주변 마트와 커피숍 등에서 해당 학부모와 마주칠 때마다 숨쉬기 힘들어했다”며 “(가해) 학부모와 만나지 않으려고 멀리 떨어진 마트에서 장을 보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4년 동안 A교사를 돕는 곳은 없었다. A교사는 “당시 교장과 교감 선생님의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 적었다. 고소당한 직후 학교장에게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교육계 인사들은 “교장은 추후 학부모 민원이 더 거세지거나 본인도 고소에 얽힐 것을 우려해 교사가 사과하고 넘어가길 바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A교사는 교원단체에도 상담을 요청했지만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아동 학대 조사 기관은 A교사의 지도에 대해 “정서적 아동 학대”라는 의견을 경찰에 제출했다. A교사는 교사노조에 보낸 글에서 “아동 학대 조사 기관은 교육 현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며 “아동 학대 결정의 판단 기준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디에서도 그들의 (판단)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다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어떠한 노력도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란 공포가 있기 때문”이라며 “그 당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적었다.
A교사 사망 이후 지역 주민들은 가해자로 지목된 학부모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분식점과 미용실 등에 ‘사적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점포 외벽에 ‘당신이 교사를 죽였다’ ‘우리 선생님을 살려내라’ 등이 적힌 쪽지를 붙이고 음식물을 입구에 뿌리기도 했다. 인터넷에서도 해당 매장 평가에 ‘1점’을 주는 ‘평점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해당 업체들은 문을 닫은 상태다. 항의를 받은 분식 프랜차이즈 본사 측도 “현재 영업 중단 조치 중이며 향후 사실관계에 따라 추가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해 학부모는 해당 분식집을 부동산 업체에 매물로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상에는 가해 학부모와 그 자녀의 사진·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퍼지고 있다. 사적 보복이나 영업 방해, 당사자 허락 없는 상태에서의 개인정보 유포 등은 모두 불법 소지가 크다.
‘학대’ 의견을 제출한 아동 기관도 비난을 받고 있다. 해당 기관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 입력하면 ‘정기 후원 취소’가 바로 연관 검색어로 뜨고 있다. 네티즌들은 “그동안 후원한 것이 아깝다” “아동 기관이 실적을 내려고 ‘학대’ 의견을 무조건 낸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당시 ‘교권보호위’를 열지 않았던 학교장이 근무하는 학교 앞에는 ‘항의성 조화’가 줄을 잇고 있다. 한 교육계 인사는 “사적 보복이 다른 불행을 가져올 수 있다”며 “이는 고인이 원하는 일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