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윤석열 대통령 정치철학, ‘자유’만 있는 게 아니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명예교수·국가미래비전연구회장 2023. 9.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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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믹타(MIKTA) 정상회동에 참석해 있다./뉴시스

“‘자유’가 없는 대통령과 ‘자유’만 있는 대통령”. 대표적인 자유주의 역사학자인 임지현 교수가 최근에 기고한 ‘조선칼럼’의 제목이다. 그는 ‘자유’가 없는 전임 문재인 대통령도 위험하지만, ‘자유’만 있는 현직 윤석열 대통령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민주가 없는 자유는 자유가 없는 민주만큼이나 위험하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철학에서 ‘자유’만 있고 ‘민주’는 없다고 비판했다.

필자는 최근 한 단체로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이념’이란 주제의 강연을 요청받고 강의안을 준비 중에 있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미래비전위원장을 맡아 ‘윤석열이 꿈꾸는 나라’라는 비전을 마련한 인연으로 강연 제안을 받은 것이다.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캠프에서 후보와 토론한 내용과 함께 대선 출마선언문, 대통령 취임사, 3·1절 기념사, 8·15 경축사, 각종 행사 때의 대통령 인사말 등을 전부 검토했다.

이런 검토 끝에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철학은 ‘개혁자유주의(reform liberalism)’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결론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자유’만 있고 그의 정치철학은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라는 임지현 교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우선 윤 대통령에게 ‘자유’만 있고 ‘민주’는 없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었다’, ‘5·18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이다’라고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기회 있을 때마다 자유민주주의 헌법 가치 수호를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기승전결 자유민주주의’인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확고한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닐까 한다.

임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 연설이 “빈자들의 사회적 생존권을 부정한 19세기적 자유주의로 후퇴한다는 의구심도 든다”고 했다. 하지만, 취임사의 내용을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소극적 자유만 강조한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가 아니라 적극적 자유를 지향한 20세기 개혁자유주의(reform liberalism)에 가까운 것으로 판단된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개인에 대한 간섭과 시장에 대한 개입이 없는 소극적 자유를 지향하는 반면, 개혁적 자유주의는 개인이 자기 삶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는 실질적 능력을 가지는 적극적 자유를 지향한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법 앞의 평등을 강조한다면, 개혁자유주의는 기회 균등을 강조한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정부의 역할을 사유재산 보호와 같은 최소한의 기능에 국한시키는 반면, 개혁자유주의는 개인의 삶을 보호하고 기회 균등을 실현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기능까지 정부 역할을 확장한다.

고전적 자유주의 현대적 계승자는 ‘선택의 자유’를 강조한 시카고대학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다. 그는 자유로운 개인적 선택이 보장되는 자유시장경제의 철저한 옹호자였다. 한편, ‘역량으로서의 자유(freedom as capability)’를 강조한 하버드대학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은 개혁자유주의 계열의 대표적 학자 중의 한 명이다. 센은 개인이 자신의 삶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수단인 역량을 갖출 때 실질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한 인터뷰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부정 식품을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 개념에 기초하고 고전적 자유주의에 기울어져 있는 듯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사에서 그는 아마르티아 센의 ‘역량으로서의 자유’라는 실질적 자유를 강조하는 개혁자유주의에 확고히 서 있었다.

‘존엄한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초와 교육의 기회가 없다면 자유는 공허하다’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에 접근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임사의 내용은 윤석열 대통령이 ‘역량으로서의 자유’, 실질적 자유를 강조하는 ‘개혁자유주의’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하버드대학 케네디 스쿨 연설에서, 자신이 말하는 자유는 자유방임이 아니며, 공정한 경쟁과 공평한 기회를 통한 타인과 공존하고 연대하는 자유라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들에 기초할 때,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철학은 소극적 자유가 아니라 적극적 자유를 지향하는 개혁자유주의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적극적 자유 내지 실질적 자유 속에는 기회 균등이란 공정(fairness)과 공평(equity) 그리고 연대(solidarity)의 가치들이 포함되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보편적 가치로서의 자유를 워낙 여러 번 강조하다 보니, 공정, 공평, 연대라는 가치들이 묻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유-공정-공평-연대’라는 가치 융합이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철학임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다.

적극적 자유와 실질적 자유가 완전히 실현되는 ‘지극한 자유’에는 공정과 공평과 연대의 가치가 포함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이러한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구체적 정책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과제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만 있는 대통령으로 끝날지 아니면 자유와 함께 공정과 연대의 가치를 실현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지는 아직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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