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엔드밀’ 세계 1위… 해외 매출이 80% 넘어
“명문대 나온 아들이 대기업 놔두고 지방 업체에 들어가더니, 또다시 사표 내고 공구 공장을 차리겠다고 하니까 어머니가 많이 말리셨죠.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해야죠. 어느새 공구 회사를 42년째 경영하고 있네요.”
절삭(切削) 공구 제조업체 YG-1 송호근(71) 회장은 1976년 서울대 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현대·대우 같은 대기업에 지원하는 대신 부산으로 갔다. 말표 고무신과 운동화로 성장한 부산 지역 기업 태화고무가 절삭 공구 산업에 뛰어든다는 얘기를 듣고서 내린 결정이었다. 송 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평범한 것들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사업 분야를 시작한다는 회사의 얘기를 듣고 어렵지 않게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 회사에서 처음으로 엔드밀(엔드밀링커터·end milling cutter)이란 공구를 알게 된 송 회장은 5년 만에 사표를 내고 신혼집 매도금 2450만원으로 1982년 4월 인천 부평에 공장을 하나 세운다. 지난해 국내외에서 매출 5500억원, 영업이익 726억원을 기록한 세계 1위 엔드밀 제조 업체 YG-1의 시작이었다.
YG-1은 소형 절삭 공구인 엔드밀을 앞세워 42년째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장수’ 중견 기업이다. 20년 넘게 엔드밀 세계 시장 1위(매출 기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엔드밀은 자동차나 항공기 부품 제조, 휴대폰 같은 전자 제품 정밀 가공, 금형 등에 쓰는 공구다. ‘뚫기’만 가능한 드릴과 달리 금속을 곡선으로도 깎고 다듬을 수 있어 가공 공정의 필수 공구로 꼽힌다.
송 회장은 태화의 공구 업체 사원 시절 미국 업체와 기술 제휴 논의를 하다 엔드밀의 중요성을 알아보게 됐다고 한다. 미국 업체가 제휴를 꺼려하기에 ‘이게 뜨는 제품이구나’ 싶어 관심 있게 지켜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엔드밀은 전체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밖에 안 되지만, 어떤 엔드밀을 쓰느냐에 따라 총 제조원가를 18%까지 아낄 수 있어 제조업체들에서 ‘고품질 제품’ 수요가 높다.
그런데 정작 송 회장이 다니던 회사에선 엔드밀에 큰 관심을 쏟지 않았다고 한다. 송 회장은 “직접 창업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를 나왔고, 공장에서 먹고 자며 제품을 생산해 1년 뒤 미국에 25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고 했다.
당시는 대부분의 거래처를 해외에서 찾아야 하는 만큼 판로를 뚫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송 회장은 무작정 공구 선진국인 미국, 독일, 일본 등을 돌며 대형 공구 기업부터 소규모 공구상 주인까지 가리지 않고 만나 제품을 설명하고 다녔다.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라’고 권유하는 등 끈질기게 매달려 이름을 알려 갔다. 송 회장은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도 한 달에 평균 4번씩 외국을 나갔다 왔다 했으니 누적된 항공사 마일리지가 1000만마일을 넘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YG-1은 미국·영국·독일·중국·인도 등에 법인이나 사무소를 설치하고 100개 이상 국가에 엔드밀을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국내에선 직원이 1800명인데, 해외에서 일하는 직원은 이보다 더 많은 4000명 이상이다. YG-1은 해외 매출 비율이 전체의 83.5%를 차지한다.
송 회장은 YG-1을 안정적인 글로벌 중견 기업으로 키웠지만, 요즘도 오전 6시쯤 출근해 업무를 시작한다. 2035년까지 세계 절삭 공구 시장 전체 1위를 하겠다는 새 목표 때문이다. 이를 달성하려면 전체 절삭 공구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인덱서블 인서트(indexable insert milling cutter)라는 공구 판매량을 늘려야 한다. 엔드밀보다 수익성이 뛰어나지만, 후발 주자인 YG-1은 이 분야 글로벌 점유율이 1% 안팎 수준 밖에 안 된다. 송 회장은 “엔드밀을 시작할 때도 ‘그게 잘되겠느냐’는 의심과 싸워왔다”며 “꿈은 후퇴하면 안 된다는 게 지론이다. 자신감 갖고 새 목표에 도전해 보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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