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로 위장해 밀수까지...中 “반도체 자력 개발” 주장의 실체
중국 화웨이는 지난달 29일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 60프로’를 공개하자마자 미국 반도체 제재를 위반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스마트폰에 들어간 7나노 반도체를 자력으로 개발했다고 밝혔는데 미국 기술 없이 자체 기술로 이 정도 첨단 반도체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메이트 60프로 내부를 본 결과 한국 SK하이닉스의 최신 D램 반도체가 들어간 것이 확인됐다. 중국 기업들은 지난 2020년 트럼프 행정부에서 시행한 제재안에 따라 미국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와 생산 장비를 수입할 수 없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전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이 제재의 적용을 받는다. SK하이닉스 측은 “미국 제재 이후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에선 화웨이가 한국이 아닌 제3국을 거쳐 SK하이닉스 D램 칩을 들여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우회 수입’이라는 것이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제재로 고사 위기에 처했던 중국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한국, 미국 반도체를 들여오기 위해 체계적으로 우회 수입 경로를 구축해왔다”며 “화웨이 새 스마트폰에는 미국 마이크론이나 삼성전자 제품도 탑재됐을 수 있다”고 했다.
◇제3국 우회하고, 임신부 위장 밀수까지
중국은 인도나 대만, 싱가포르 등 가까운 국가에 별도 법인을 세우고 이곳을 해외 반도체 우회 수입 창구로 사용하고 있다. 주로 AI 개발에 필수로 들어가는 미 엔비디아의 GPU(그래픽 처리장치)를 수입한다. 해외 기업들이 구매하고 남은 재고를 시장에 내놓으면 중국 판매상들이 이를 사들여 선전 등에서 판매하는 식이다. 서류상으로는 반도체 기업이 중국에 직접 판매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미 정부도 적발하기 어렵다.
중국은 이런 우회 수입을 통해 반도체 생산 장비도 미국 몰래 들여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무역통계에 따르면 말레이시아가 지난해 글로벌 3대 반도체 장비 수출국인 미국·네덜란드·일본에서 수입한 반도체 장비는 5억8000만달러(약 7700억원)로 전년 대비 120% 넘게 증가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중국이 말레이시아에서 들여온 반도체 장비 규모도 5억9000만달러(약 7800억원) 늘었다. 말레이시아가 반도체 제조 기반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의 우회 수입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주변국에서의 반도체 밀수도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 중국 여성은 마카오에서 임신부로 위장한 채 200개가 넘는 인텔 CPU(중앙처리장치) 칩을 배에 두르고 귀국하려다가 적발됐다. 과거 베트남 국경에서 희귀 야생동물, 광물 등을 밀매하던 전문 조직들이 최근엔 큰돈을 벌기 위해 반도체를 밀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를 나르기 위해 레이더가 포착하기 어려운 저공비행 드론도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밀수나 우회 수입은 해외에서 남는 반도체 재고를 들여오는 탓에 물량이 상대적으로 적고, 정상가의 2배 웃돈을 줘야 한다. 이 때문에 올 들어선 아예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 엔비디아의 AI칩을 사용하는 미국 기업의 클라우드(가상 서버) 서비스를 이용하는 중국 기업이 나오고 있다. 반도체 수입이 막히자 고성능 칩이 들어간 미국 서버를 빌려 AI 개발에 활용하는 것이다. 미 외교전문 매체 포린폴리시는 “실제 AI칩을 사용하는 것과 클라우드를 통해 가상으로 칩 성능을 빌리는 것 사이에 성능 차이는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일부 중국 자본은 반도체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사모펀드로 위장해 한국·미국에서 반도체 기업 인수를 시도하기도 한다.
◇미 제재 더 촘촘해질 듯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우회 수입과 클라우드를 통한 AI칩 서버 접근으로 대중(對中) 제재가 무력해질 위기에 처하자 제재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최근 미 정부로부터 자사 GPU 칩인 A100, H100를 중국뿐 아니라 중동 일부 국가에도 수출하려면 별도 판매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이에 대해 영국 텔레그래프는 “중동이 아닌 중국을 겨냥한 제재 조치”라고 분석했다. 또 미국 정부는 중국이 미국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추가 제재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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