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그레이 자카르타

박병진 2023. 9. 1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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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를 찾았을 때다.

인구 과밀화에 지반 침하, 대기오염까지 심각한 지경에 다다르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도를 자바섬에 있는 자카르타에서 1200㎞ 떨어진 보르네오섬 누산타라로 이전할 계획을 세우고 속도를 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자카르타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2045년까지 40조원이 투입되는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 사업과 관련한 인프라 건설에 협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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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를 찾았을 때다. 호텔에 짐을 푼 뒤 잠시 휴식을 즐기려고 야외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복을 입은 채 선베드에 누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데 하늘에서 까만 오염물질이 눈송이처럼 내리는 장면이 목격됐다.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직원에게 물었더니 “늘상 있는 일”이라며 “하루 한 번 내리는 스콜 덕택에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에서 중국발 미세먼지의 악몽을 겪기 전이라 충격은 더했다.

스콜은 좁은 지역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비를 뿌리는 아열대 지방의 대표적인 강우 현상이다. 맑은 날씨가 순식간에 돌변해 폭우를 뿌린 뒤 다시 맑게 갠다. 차량과 오토바이 매연에 찌든 동남아 지역 대도시 공해를 어느 정도 씻어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엘니뇨 현상 등으로 건기가 평소보다 길어지면서 스콜이 내리는 패턴은 불규칙해지고, 아예 내리지 않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거기에다 바람도 불지 않아 대기오염은 악화일로다.

이처럼 ‘최악 공기질’로 악명 높은 도시 상당수가 아시아에 몰려 있다. 자카르타 역시 마찬가지다. 햇빛 한 조각 찾기 힘든 희뿌연 하늘 탓에 도시는 마치 안개 속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기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대기질 분석업체 아이큐에어(IQAIR)에 따르면 자카르타의 공기질지수(AQI)는 전 세계에서 쿠웨이트 수도 쿠웨이트에 이어 두 번째로 나쁘다. 자카르타 보건청이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호흡기 질환을 앓은 시민이 약 14만6000명이라고 집계했을 정도다.

인구 과밀화에 지반 침하, 대기오염까지 심각한 지경에 다다르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도를 자바섬에 있는 자카르타에서 1200㎞ 떨어진 보르네오섬 누산타라로 이전할 계획을 세우고 속도를 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자카르타에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2045년까지 40조원이 투입되는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 사업과 관련한 인프라 건설에 협력하기로 했다. 노후 교통수단 및 미비된 교통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우리 기업들의 활약이 예상된다. 질식 직전의 지구를 구하는 데도 더 힘을 보태길 기대한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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