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안전사회를 위한 대타협이 필요한 때

2023. 9. 1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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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한국
정부의 단기 미봉책이 근본 원인
예산, 교정보호시설 부족 심각
상수도만큼 하수도도 중요
혐오시설 배척 문화도 바뀌어야
김종민 변호사·前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공짜 점심은 없다’는 이치는 범죄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의 잇단 흉기 난동사건과 급증하는 마약범죄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범죄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2016년 기준 마약류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최대 4조9000억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지만 작년 적발된 1만8395명의 마약사범 수, 다크웹이나 텔레그램 등을 통한 빠른 마약류 확산 추세를 고려하면 앞으로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가늠하기 어렵다.

지난 8월 당정이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흉악범죄 대책으로 흉악범죄자 전담교도소 신설, 정신질환자의 범죄 예방을 위한 사법입원제 도입 등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은 간단하지 않다. 5개 국립정신병원에 근무하는 정신의학과 전문의 충원율은 37.5%에 불과하고 중증정신질환 범죄자를 주로 수용하는 법무부 산하 국립법무병원도 피치료감호자 794명을 의사 1명당 77.2명 비율로 담당하고 있다. 성폭력 치료재활센터 전문 의사 수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의료진과 함께해야 하는 직업훈련사, 임상심리사 등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판사가 정신장애인 강제입원을 결정하는 사법입원제가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하지만 판사가 직접 환자를 심문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2022년 국내 강제입원 환자에 대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심사 건수(2만9195건)를 고려할 때 전문성도 없는 전국의 판사 3000명을 총동원해도 1인당 연간 10건씩 맡아야 한다. 전문병원과 전문의가 절대 부족한 상황까지 감안한다면 현실화되기 쉽지 않다.

예산과 교정보호시설의 구조적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립정신병원 근무 의사들의 임금은 민간 의료기관 의사의 30~50%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 국내 마약류 중독자 치료의 97%를 담당하고 있는 참사랑병원이 폐업 위기에 몰린 것도 총 8억2000만원의 빈약한 마약치료보호기관 예산 때문이다. 2000년 시작된 성남보호관찰소 문제는 우리 사회 님비현상의 단면을 보여줬다. 안양교도소 이전 문제도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으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회가 건강히 유지되려면 상수도도 중요하지만 하수도도 중요하다. 더럽다고 하수도를 피하고 꾸준히 개보수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오물이 넘쳐나는 길거리를 걸어 다닐 수밖에 없다. 흉악범죄 예방을 위해 소년범과 재범 방지 대책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담당하는 보호관찰소를 혐오시설이라고 배척하면서 정부만 비난하는 것은 성숙한 시민의 자세가 아니다. 마약범죄자 재활치료시설에 대한 예산 투입을 아까워하면서 마약범죄가 급증하는 현실만 탓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프랑스는 2000년 이후 사회 안전과 중대범죄 예방, 효과적인 형사사법을 위해 법무부가 5년 단위의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지속 추진하고 있다. 추진전략과 정책목표를 명확히 하고 이를 뒷받침할 인력과 시설투자, 예산 계획도 예산법률에 관한 조직법(LOLF)을 토대로 만들어 나간다. 확정된 계획은 70여 개가 넘는 지표로 평가된다. 총괄 예산을 통해 소관 부처에 재량권을 부여하되 정책평가 결과를 차기 예산 수립에 반영한다. 법경제학적 관점의 저비용·고효율 형사정책 추진이 담보된다.

공동체를 보존하고 범죄로 인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범죄 예방과 안전한 사회를 위해 대타협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국민 모두가 희생과 비용을 분담하겠다는 결단이 없으면 미래의 번영은 기약하기 어렵다. 그동안 정부는 대형 형사사건이 터질 때마다 단기적 미봉책으로 일관했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형사정책 수립과 예산 투입을 소홀히 했다. 정부 탓만 하며 교정보호시설을 혐오시설로 기피해온 국민들의 책임도 분명히 지적돼야 한다.

사회적 대타협으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반드시 불가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수도 정비를 소홀히 해 범죄의 오물이 넘쳐나는 길거리를 방치한다면 모두가 피해자가 될 뿐이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것은 가장 기본적 존재 방식이다.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른 존재에게 전가하는 사회는 존속될 수 없다. 범죄가 만연하면 민생도 경제도 없다. 점심값을 낼 준비는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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