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 1980~90년대 개그계를 평정한 황기순의 인생 이야기가 공개됐다.
황기순은 만19세에 M사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금상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연예계에 데뷔했다. '청춘만만세', '일요일 밤의 대행진' 등의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척 보면 앱니다~'라는 유행어로 스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개그콘테스트에 나간 계기를 묻자 황기순은 "라디오 방송에 학교를 탐방하는 프로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끼가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라디오 프로그램인데도 불구하고, 셀프 꽃가루를 뿌리면서 콘테스트장에 입장했다. 아이들의 환호가 이어졌고, 그 분위기에 편승해 자연스럽게 되더니 PD분이 집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저에게 전화를 달라고 했다. 개그콘테스트 이후 바로 데뷔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황기순은 "개그콘테스트 1기가 최양락, 이경규, 엄용수, 김정렬, 김보화 선배다. 2회 라디오 개그콘테스트 당시에 본선에 15명이 올라갔다. 내가 15명 중에 후보 번호가 맨끝인 15번이었다"고 했다.
이어 "개그콘테스트 행사장을 보니 아수라장이 되어서 집중이 잘 안 될 것 같은 상황이었다"며 뭔가 보여줘야 겠다는 결심을 했고, 개그콘테스트 악단장을 찾아갔다.
그는 "13번째 참가자가 있을때 내가 악단장에게 가서 '춤을 추겠으니 음악을 틀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PD에게 이야기를 했냐'면서 '안된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제가 PD에게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고, (결국에는 제 차례때) 음악이 딱 나왔다. 음악에 맞춰 신명나게 춤을 췄다. 대선배님들의 춤으로 금상을 수상했다"며 41년 전의 감동을 떠올렸다.
당시 스케줄을 묻자 그는 "코미디 프로그램 4개, 예능 프로그램 2개를 고정으로 출연했다. 어린이 프로그램 MC도 봤다"고 털어놨다. 이어 "거기에다가 나이트클럽 일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밤무대 스케줄이 하루에 평균적으로 6~8군데 있었다. 그때는 무대에서 잘 놀고 잘 까불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가진 재주보다 더 많이 대중들에게 평가를 받고, 사랑받았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전성기때의 수입을 묻자 그는 "한 달 수입이 못해도 2000만원에서 3000만원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 당시 엄청난 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돈을 절반씩만 저축했어도"라며 "(저축을 하지 않은 게) 너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1980년대 개그계를 주름잡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충격적 소식을 전한다. 1997년 뉴스를 통해 황기순의 해외 원정도박 사건이 알려지며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도박에 빠진 계기를 묻자 "너무 바쁜 일정에 유일하게 챙겼던 것이 경조사"라고 답했다.
"그때 재미로 고스톱을 쳤는데, 수입이 많으니까 당시에 30만원, 50만원 등 몇십만원을 잃게 되어도 재미있게 놀다가 집에 갔다. 하면 안되겠다고(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서도 그 분위기가 되면 본전 생각이 났다. 나는 도박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본전을 찾기 위해서 또 자리를 찾고, 만나고 또 잃고 이런 상황이 반복됐다. 상황이 안 좋았을때 돌파구로 선택한 곳이 카지노였다"고 밝혔다. 30분 만에 잃은 돈이 8000불(한화 약 1000만원)인 적도 있었다. "처음에 돈을 잃었을 때는 다음에 와서 꼭 이겨야지"라는 마음이었다. 세번, 네번, 다섯번 정도 그렇게 갔을때는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나는 비행기에 탑승을 하고 있고"라며 생각과 다르게 행동을 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 깊은 구덩이가 파져 있는 상황이었다"며 도박 중복을 논했다.
황기순은 자신의 모친이 해외원정도 박 뉴스를 모르길 바랬지만, 지인을 통해 뉴스 보도 3일 뒤에 아들 소식을 알게 됐다. 그 충격에 쓰러졌고, 방송국에서는 황기순 집까지 취재를 왔다. 전 재산을 탕진하고 필리핀에서 도피 생활을 했던 그는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그때의 심정을 밝혔다.
그러던 중 황기순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아줄을 잡듯 선배 김정렬에게 전화를 걸었던 일화를 털어놨다. 김정렬은 반찬과 개그맨 동료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을 가지고 황기순을 만나기 위해 필리핀으로 향했다. 그는 "'어떻게든 (기순이를) 살려보자, 용기를 주자, 마음의 격려라도 한 번 해보자' 그런 애틋한 마음으로 (필리핀에) 찾아갔었다"고 떠올렸다. 황기순은 "주병진 형이 봉투에 '기순아, 죽지만 말고 살아 돌아와라'라고 메시지를 적어줬었다. 손가락질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동료들의 마음에 감사했다"며 벼랑의 끝에서 손을 내밀어 준 선후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황기순은 "뉴스에 나왔다는 얘기를 딱 듣는 순간에 큰 무대에서 장막이 내려오듯한 느낌이었다. 몸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체념,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구나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죽어야 되나, 어떻게 죽어야지, 현실은 배고프고 뭘 먹어야 하는데, 밥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배가 터질 때까지 쑤셔 넣었다. 버텨야 하니까"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함께 방송에 출연한 황기순의 둘째 누나 황도순씨는 "그때 엄마 나이가 지금 내 나이"라며 "힘든 건 이루 말할 수 없다. 내색도 못하셨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어느날 새벽에 일어나보니 엄마가 사라졌다. 나중에 뭔가를 비닐봉지에 뭔가를 담아오셨다. 담배 꽁초를 주워오셨다. 왜냐하면 길을 청소하면서 담배 꽁초를 하나 주울때마다 우리 기순이 빚 100원씩이라도 감해달라고 그걸 주워서 안 버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도순 씨는 "'엄마, 왜 담배꽁초를 안 버리냐'고 물었더니 내가 '우리 기순이 올때까지 얼마나 모으나 보려고 한다'고 답했다"며 살아있는 아들이 감사해 더 열심히 담배꽁초를 주웠다고 밝혔다. 황기순이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커다란 쌀자루 5개 분량의 담배꽁초를 모았다고 전했다.
황기순은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해줄수 있는 답은 없다"며 "엄마가 '제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머리 조아리고 죄인이 되셨다. 엄마가 대신 손가락질을 받아줄테니까 죽지만 말고 살아야 해'라고 하셨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날 방송에서는 황기순이 해외 원정 도박사건 이후 참회하는 마음으로 23년째 하고 있는 '거리 모금 기부 행사' 현장도 공개됐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 희망의 전화 ☎129 / 생명의 전화 ☎1588-9191 /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