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집행, 국민 법감정에 부합” vs “사형제 폐지 흐름에 역행”[인사이드&인사이트]
최근 살인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출소한 지 1년 2개월 만에 또다시 살인을 저지른 60대 남성의 법정 발언이 알려지면서 사형 집행을 촉구하는 여론은 더 거세지고 있다. 이 남성은 지난달 24일 창원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에 “시원하게 사형 집행을 한번 딱 내려 달라”라고 요구했다. 그는 판사가 실제로 사형을 선고하자 “검사 놈아 시원하제?”라며 검사를 조롱하기도 했다. 두 차례의 살인과 세 차례의 살인미수를 저지르고도 전혀 사형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범죄자의 모습에 많은 국민이 충격을 받았다.》
● 한국 ‘실질적 사형 폐지국’… 26년간 미집행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날은 26년 전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30일이다. 이날 서울구치소 등 사형 집행 시설 4곳에선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3번째로 23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다음 정권에 사형 집행의 부담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임기 마지막 해 연말에 사형을 집행하는 관행에 따른 조치였다. 1976년 27명에게 사형을 집행한 이후 최대 규모이기도 했다.
1991년 시각장애를 이유로 해고된 것에 앙심을 품고 승용차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광장을 질주해 2명을 숨지게 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김용제가 이날 사형됐다. 1990년 법정 증인 살해 사건의 범인 변운연과 1991년 경찰관 총기 난동 사건의 범인 김준영 등도 사형 집행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법무부는 “정부의 엄정한 법 집행 의지를 표명하고 법의 엄정함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사회 기강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사형 집행 취지를 밝혔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26년 동안 한국에선 단 한 차례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 사형 미집행 10년째가 됐던 2007년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했다.
사형이 집행되지 않으면서 법원의 사형 선고도 급감하는 추세다. 1991년 한 해만 29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마지막 사형이 집행된 1997년을 기점으로 사형 선고 인원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1987∼1996년 사형 선고 확정 인원은 112명이었지만, 1997∼2006년은 47명으로 줄었다. 2007∼2016년은 9명에게만 사형 선고가 확정됐다.
현재 법무부 교정시설에는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강호순 등 사형이 확정된 55명이 수감돼 있다. 군 사형수를 제외하고 가장 최근에 사형이 확정된 수감자는 딸과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전 여자친구의 부모를 살해한 장재진(33·2015년 확정)이다. 강원 고성 최전방 경계부대(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5명을 살해한 임모 병장(31) 등 4명의 군 사형수는 국군교도소에 따로 수감돼 있다.
● OECD 회원국 중 2곳만 사형 집행
국제앰네스티가 발간한 ‘2022년 연례 사형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는 112개국, 일부 범죄에 대해서만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는 9개국이다. 지난해 20개국에서 883명이 사형됐는데, 93.4%(825건)가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에서 집행됐다.
국가별로는 이란에서 최소 576건 이상 집행돼 가장 많았고, 사우디아라비아(196건), 이집트(24건), 미국(18건) 등의 순이었다. 아시아에선 싱가포르 11건, 방글라데시와 미얀마가 각각 4건, 일본은 1건이었다. 국제앰네스티가 집계하지 못한 국가와 중국, 북한, 베트남 등 일부 국가가 사형 집행 건수를 극비에 부치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사형 집행 규모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웃 나라 일본은 ‘국민 법 감정’ 등을 이유로 사형 집행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1명을 사형했는데, 아키하바라 묻지 마 살인 사건의 범인 가토 도모히로였다. 그는 행인을 향해 트럭을 몰아 3명을 숨지게 했고, 충돌 후 시민들에게 단도를 휘둘러 4명을 더 숨지게 했다.
● “한 장관 지시 후 사형수 태도 개선”
사형 집행 시설 점검을 지시한 한 장관은 당장 사형을 집행하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집행 시설이 폐허처럼 방치되고 일부 사형 확정자들이 교도관을 폭행하는 등 수형 행태가 문란하다는 지적들이 있었다”며 “법 집행 시설을 유지 관리하고 사형 확정자들의 수형 행태를 조사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장관은 또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사형제는 여러 철학적 고민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외교적인 문제도 강력하다. 만약 사형을 집행하게 되면 유럽연합(EU)과의 외교관계가 심각하게 단절될 수 있는 문제”라며 “(사형 집행 재개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1997년 이후 집행을 하고 있지 않은 면이 있다”고도 했다.
법무부가 장기간 사형 미집행으로 태도가 불량해진 사형수들을 겨냥해 사형 집행 시설 점검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교정당국 관계자는 “사형을 선고받은 수감자들의 태도 때문에 교정시설에서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가 과거부터 나왔다”며 “한 장관이 (점검) 지시를 내린 뒤 수감자들의 태도가 훨씬 나아지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장관의 지시에 대해 “사형 집행을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단계라기보다 법무부가 사형제 폐지를 준비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민 사이에선 집행은 몰라도 제도로서 ‘사형제’는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지난해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가량이 ‘사형제 유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사형 집행 가능” vs “폐지 흐름 역행”
사형 집행 재개 가능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현행법에 따르면 사형이 확정된 수감자들에 대해 형을 집행한다고 위법하거나 헌법적 가치에 반하는 게 아니다”라며 “(정부가) 국민들의 법 감정을 고려해 엄벌주의 기조를 전면에 내세운다면 그 대표 격인 사형 집행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형법 전문가는 “사형을 계속해서 집행해온 국가라면 몰라도 사형 폐지 수순을 밟았다가 역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문명사회로 발전할수록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박탈하지 않는 제도 유지 방안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사형 집행을 재개한다면 현재 남아있는 사형수 중 누구에 대한 형을 우선적으로 집행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사형 집행은 한 나라의 주권적 판단에 따르는 것”이라면서도 “국가의 형사정책적 방향은 물론이고 국가를 둘러싼 외교적 상황, 국민의 법 감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형 집행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채연 사회부 기자 y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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