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게 사라졌다”…120년만의 지진에 사상자 2천명 훌쩍

권한울 기자(hanfence@mk.co.kr) 2023. 9. 10.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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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취약 벽돌집, 얕은 진원에 속수무책
1400명 중태로 희생자 더 늘듯
마라케시 세계 문화유산도 손상
주민·당국·군 필사의 구조·수색
6.8의 강진이 북아프리카 모로코를 덮친 가운데 9일(현지시간) 중부 도시 마라케시에서 한 여인이 지진으로 허물어진 집을 바라보며 울부짖고 있다. [AFP = 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120년 만에 강진이 발생해 2000명 넘게 사망했다. 2000명이 넘는 부상자 중 1400명 가량이 중태인 데다 추가 수색과 구조 작업이 이뤄지고 있어 사망자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지난 8일 밤 11시 11분께 모로코 서남부 중세 고도 마라케시에서 75㎞ 떨어진 지점에서 규모 6.8 지진이 발생했다. 뉴욕타임즈(NYT)는 강진은 마라케시 뿐 아니라 모로코 대서양 연안의 휴양지 아가디르와 남동부 주요 도시인 와르차자트까지 흔들며 모로코 중심부를 관통했다고 전했다. USGS는 모로코 오우카이메데네 마을 근처에서 약 26㎞ 깊이로 비교적 얕은 지진을 감지했으며, 포르투갈, 스페인, 알제리에도 약한 흔들림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마라케시 외곽에 사는 라자 부리(33)는 “비행기가 내 위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마라케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48㎞ 떨어진 진앙지 인근 아미즈미즈 마을에 사는 야스미나 베나니(38)는 NYT에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큰 소리를 들었다”면서 “공포를 느꼈고,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몇 년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진흙 벽돌로 지은 집에 사는 그는 지진으로 벽에 금이 가고 꽃병과 램프가 깨졌으며 천장 일부가 바닥으로 떨어져 부엌이 먼지와 파편으로 막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 여성은 모로코 국영방송에 남편과 네 명의 자녀가 지진으로 사망했다며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1000여 명이 거주하는 모로코 남동부의 시골마을 메즈구이다에에서는 주민들이 여진이 두려워 거리에서 잠을 잤다고 NYT는 전했다.
9일(현지시간) 규모 6.8의 강진이 강타한 모로코 마라케시 주민들이 지진 여파에 광장으로 대피한 채 노숙하고 있다. [AFP = 연합뉴스]
피해는 지진과 폭우에 취약한 전통 건축방식인 진흙 벽돌집이 많은 시골 지역에 집중됐다. 많은 사람들이 잠든 심야에 진원이 얕은 강진이 닥치면서 피해가 더 커졌다. USGS는 “지진의 깊이가 얕고 인구 밀집 지역과 가까워 많은 건물이 심각하게 흔들렸고 이는 치명적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본진 발생 20분 후 규모 4.9의 대규모 여진이 한 차례 발생했으며 더 작은 여진이 계속 감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USGS는 전했다. 오마르 파르카니 전 모로코 건축가협회장은 “진앙지 인근 지역에는 이 정도의 강진을 견딜 수 없는 흙집들이 많다”면서 “이 지역 주민들은 너무 가난해 직접 짓거나 저숙련 노동자의 도움을 받아 집을 짓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모로코 건축가들은 NYT에 “최근 몇 년 동안 내진 설계 기준을 강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에도 많은 건축업자들이 여전히 건축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규정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마을들이 마라케시 주변의 험준한 산에 지어졌을 뿐 아니라 시골의 몇 안 되는 도로가 지진 잔해에 막혀 초기 구조 활동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일부 지역에서는 전화와 전기가 모두 끊겼다. 모로코 당국은 군까지 동원해 실종자 구조·수색 작업에 나섰다. 일부 주민들은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맨손으로 잔해를 뒤졌다.

모로코 내무부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최소 2012명(10일 기준)이 사망하고 2059명이 부상을 입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이번 지진 규모를 6.8로 추정했지만, 모로코 지질연구소는 7.2로 추정했다고 NYT는 전했다. 미국 기상청은 “현지 추정치가 더 정확할 수 있지만 초기 진도 측정은 진동으로 측정되므로 지진학자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마라케시 남동부 시골 지역인 하우즈와 하이 아틀라스 산맥의 일부가 포함된 지역에서 피해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성명을 통해 “마라케시와 그 외곽의 민간인 30만명 이상이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라케시의 메디나 일부도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특히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로 ‘마라케시의 지붕’으로 불리는 쿠투비아 모스크의 첨탑(미나렛)도 일부 손상된 것으로 전해졌다.

USGS는 “흔하지는 않지만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고 NYT는 전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와 유라시아판 사이의 슬로우 모션 지각 충돌이 일어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는 설명이다. AP통신은 규모 6.8의 지진은 120년 만에 모로코를 강타한 가장 강력한 지진이라는 전문가 의견을 전했다. USGS에 따르면 이번 지진은 1960년 3월 서부 해안에서 최소 1만2000명이 사망한 규모 5.8의 아가디르 강진 이후 가장 강력하다.

세계 각국과 국제기구 등은 모로코 강진 피해를 애도하고 지원 의사를 밝혔다. 한때 모로코를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가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부쳤다. 모로코 주재 프랑스 대사관은 위기 핫라인을 개설했고,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유 시장은 자매 도시인 마라케시에 구조 활동을 위한 소방관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모로코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고, 약 7개월 전 5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대지진을 겪은 튀르키예도 구호 요원과 텐트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상도 나란히 모로코에 대한 연대 의사를 표명했다. 모로코와 국교를 단절한 알제리와 이란 정부도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지원 제의에도 모로코 정부는 외국 구조대의 배치를 위해 필요한 공식 지원 요청을 아직 하지 않고 있다. 모로코 당국은 지진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3일간 국가 애도 기간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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