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잃어야"… 대전 교사 극단 선택에 지역 교육계 비통

정민지 기자 2023. 9. 10. 21:4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악성민원에 스스로 생 마감한 20년차 교사… 추모공간·조사단 구성
탁상공론 아닌 실질적 교사 보호책 시급… 관계법령 즉각 개정 촉구
지난 7일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40대 교사가 생전 근무했던 학교 앞에 근조 화환이 놓여져 있다. 사진=김영태 기자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이 두 달 채 지나지 않아 대전에서도 한 초등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해 지역 교육계가 충격에 빠졌다.

해당 교사가 생전 학부모 악성민원에 시달렸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현직 교사들은 슬픔과 분노를 표하는 한편, 교원단체는 철저한 수사와 관계법령 즉각 개정 등을 촉구한 상태다.

10일 대전교사노조와 대전시교육청, 대전 유성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 40대 여성 A 씨는 지난 5일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7일 끝내 숨졌다.

올해로 20년차 교사인 A 씨는 2019년 당시 1학년 담임을 맡았던 반 학부모들로부터 악성민원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이때 아동학대 사건에 연루된 뒤 이듬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학부모들의 민원은 이후 4년여 동안 이어졌다.

사안을 공론화한 대전교사노조는 A 씨가 재직했던 학교와 시교육청 내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이날 교사가 생전 근무했던 학교 정문 앞에서 한참을 서서 묵념하던 한 동료교사는 눈물을 보이며 자신 또한 악성민원 피해자라고 했다. 이 교사는 "민원 스트레스로 정신과 약을 타러 나왔다가 비보를 듣고 찾아 왔다"며 "어디서든 민원으로 고생하는 교사들이 너무 많다"고 토로하며 더 이상 말을 맺지 못했다.

대전교사노조는 잇단 비보에 우울감을 느끼는 동료 교사들을 위해 시교육청에 대대적인 심리치료 지원 등을 요청할 예정이다.

대전교사노조 관계자는 "현재는 지역 동료 교사들이 큰 충격을 받은 상태라 함께 슬퍼하고 추모하는 데 집중하려 한다"며 "그동안 눌러왔던 감정들이 터져 나오며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는 교사들이 많은 만큼 대대적인 심리치료 방안이 나와야 된다"고 강조했다.

시교육청은 경찰 조사와 별개로 자체 조사단을 꾸려 진상 파악에 나섰다. 그동안 A 씨를 상대로 신고된 아동학대 내역 등을 조사하고, 동료 교사 등에 대해서는 대면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설동호 대전시교육감은 이날 담화문을 통해 "교육청 차원에서 철저하고 엄정하게 조사하고, 교육활동 보호 대응책 마련과 학교담당 변호사 제도 도입 등 교권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교권 회복 및 보호 관련 법안이 조속히 입법화될 수 있도록 관계 당국과 입법기관과도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직 교사들은 아동학대 관련 법 개정 등 최소한의 보호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학부모로부터 악성민원을 받고 아동학대 신고를 당해도 현 제도로는 교사 개인이 온전히 책임져야 해서다.

지역 한 초등교사는 "교사들끼리 '얼마나 더 잃어야 법이 개정되는 거냐'는 얘기를 한다"며 "교육부는 무슨 일이 생겨도 학교 자체적으로 해결하라는 지침 뿐이다. 제일 중요한 건 법 개정인데 법 개정에 대한 얘기는 없고, '보호하겠다'는 말만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사는 "이제서야 변호인단 구성 등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사안이 발생하면 교장·교감은 대부분 책임 소재가 되길 원치 않아 교사 개인이 '나는 아동학대를 하지 않았다'는 걸 입증했어야 했다"며 "운이 없었다면 내가 겪었을 일이란 걸, 또 아무런 보호조치가 없다는 걸 모두 잘 알기 때문에 교권회복 목소리에 강한 연대가 생기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 중등교사는 "아동학대 걸리면 답이 없다. 숨진 A 씨는 1년 동안 조사 받고 결국 무혐의로 나왔지만 무혐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당사자에게는 극심한 스트레스"라며 "학부모가 '소송 건다'고 교사를 협박하지 못하게, 최소한 교사를 보호할 수 있도록 탁상공론할 게 아니라 현장 교사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6개 교원단체는 이날 공동성명서를 내고 정부·여야를 상대로 아동학대 관계 법령 즉각 개정과 '교권 보호 입법안' 즉각 의결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교육활동과 생활지도가 아동학대로 신고돼 조사·수사받는 일이 없도록 아동학대 관계 법령을 즉각 개정하고, 학습권·교육권을 침해하는 학생을 수업에서 즉시 분리할 수 있도록 교육법을 즉각 개정하라"며 "이달 21일 교권 보호 입법안을 본회의에서 즉각 의결하라"고 했다.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