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힘’ 국민의힘
야당일 땐 언론중재법 반대
여당 되니 개혁 명분 내세워
비판 언론 재갈 물리기 앞장
“언론탄압 저지” 민주당도
과거 행보에 스스로 발목
국민의힘의 ‘가짜뉴스’ 처벌 강화 추진을 두고 야당 시절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 ‘내로남불’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야당 시절 언론 자유를 강조하더니 집권 후에는 ‘국가반역죄’까지 거론하며 가짜뉴스 처벌을 빌미로 비판언론 옥죄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의 ‘대장동 허위 인터뷰 의혹’을 ‘대선 공작 게이트’로 규정하고 가짜뉴스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언론개혁’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허위 보도 등 악의적 행위가 한 번이라도 적발되면 언론사를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까지 추진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7일 김씨의 인터뷰를 보도한 뉴스타파를 향해 “사형에 처해야 할 만큼의 국가 반역죄”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소속 장제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8일 뉴스타파를 겨냥해 “폐간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김만배·신학림씨와 뉴스타파 기자는 물론 뉴스타파 인터뷰를 인용해 보도한 MBC 기자 4명도 경찰에 고발했다. 이러한 태도는 ‘내로남불’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은 야당 시절엔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던 언론중재법에 반대했지만 여당이 되자 입장을 바꿨다. 언론중재법은 언론이 고의 또는 중대과실로 허위·조작 보도를 하면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다. 김기현 대표는 야당 원내대표 시절이던 2021년 8월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추진을 “정권을 향한 언론의 건전한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현대판 분서갱유”라고 반대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후보가 되기 전인 2021년 8월 언론중재법을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언론재갈법”으로 규정했다. 윤 대통령은 “이 법이 시행된다면 권력비리는 은폐되고 독버섯처럼 자라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2월엔 “진실을 왜곡한 기사 하나가 언론사 전체를 파산하게도 할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을 바꿨다. 이 발언이 민주당이 추진하던 언론중재법에 찬성하는 취지로 해석되자 당시 국민의힘 지도부가 ‘언론중재법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수습했다.
여권의 언론 공격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사도 선택적으로 폐간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재랑 정의당 대변인은 지난 8일 국회 브리핑에서 “타당 후보 공격할 땐 ‘합리적 의혹 제기’이지만 자당 후보 공격하면 죄다 ‘가짜뉴스’이고 ‘대선 공작’이라고 얘기하는 당정의 태도가 현재 벌어지는 언론에 대한 공격이 결국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며 “한 국민의힘 의원은 대선 당시 국정감사에서 타당 대선 후보와 조폭의 연계설을 주장했지만 가짜뉴스라 밝혀졌어도 해명 한마디 없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정부의 가짜뉴스 규제 강화 방침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언론탄압에 저지 방침을 밝혔지만 민주당 또한 여당 시절 언론중재법과 포털 규제법을 당론으로 추진했던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언론중재법은 ‘조국 사태’ 이후 언론·검찰 개혁을 완수하라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도 대선 경선 후보 시절 언론중재법에 찬성한 바 있다. 이 대표는 2021년 8월 언론중재법이 규정한 5배의 징벌적 배상책임 조항을 두고 “5배도 약하다”며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강력한 징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방송 장악’을 막겠다며 뒤늦게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방송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당내에선 ‘여당일 때 뭐 했나’라는 자성이 나왔다.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6년 7월 방송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법안 처리에 미온적이었다. 채이배 전 민주당 비대위원은 지난해 4월 당시 당 지도부가 추진하던 언론중재법 대신 방송법을 언론개혁의 우선 과제로 제시하면서 “솔직하게 또 내로남불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언론개혁을 바라는 국민에게 얼굴 들기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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