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물 제작” 범인 자백에도…“일부 영상 아동·청소년 단정 못해” 직권 판단한 이균용

강연주 기자 2023. 9. 10. 21: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1년 성착취물 판결 보니
1심서 징역 5년 받은 피의자
항소심선 2년6개월로 줄어
잇단 성범죄 감형 판결 논란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사진)가 여러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한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자백했음에도 ‘특정 영상은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음란물이라 볼 수 없다’며 1심을 깨고 부분 무죄를 선고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피고인이 혐의를 모두 인정한 터라 성착취물 영상에 나오는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인지는 항소 이유도, 쟁점도 아니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이 후보자는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성착취물에 한해 ‘성인도 교복을 입을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경향신문은 10일 서울고법 제8형사부 재판장이던 이 후보자가 2021년 1월29일 선고한 성착취물 제작자 A씨의 항소심 판결문을 확보했다. A씨는 총 7명의 아동·청소년에게 다수 성착취물을 촬영하도록 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A씨 측은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을 내세워 1심 형량이 과하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이 후보자는 피고인의 항소 이유를 판단하기에 앞서 피해자 7명이 모두 ‘아동·청소년’에 해당하는지부터 직권으로 따졌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4명으로부터 총 107회에 걸쳐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노출한 상태로 촬영한 사진이나 자위행위 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전송받았다.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4명은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A씨와 처음 만나 ‘자신이 고등학생이다’라고 직접 밝히기도 했고, 교복 차림의 사진도 A씨에게 전송했다고 한다. A씨도 이들이 각각 고등학교 2·3학년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피해자 4명이 아동·청소년이 아닐 수 있다며 이들의 영상을 아동·청소년 이용 성착취물로 판단한 1심을 직권으로 깨고 무죄 판단을 내렸다. 이 후보자는 “성인도 교복을 입고 사진 촬영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익명 채팅방에서는 자신의 나이나 학년을 실제와 다르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 후보자는 이러한 정황과 피고인이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영상을 유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일부 피해자에겐 배상금을 지급하고 합의한 점 등을 들어 A씨의 형량을 징역 5년에서 2년6개월로 줄였다.

이 후보자는 판결 경위를 묻는 경향신문 질의에 “피고인의 자백을 포함해 증거로 인정되는 사실만으로는 촬영 대상자들이 ‘아동·청소년’에 해당한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오히려 촬영 대상자들이 ‘아동·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의심되는 사정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대법원 판례 요건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려웠다”며 “해당 사건은 검사도 상고하지 않아 확정됐다”고 해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후보자가 성착취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사 출신 오선희 변호사는 “피고인은 성명불상자 3인을 청소년으로 인지한 상태에서 성착취물을 제작하도록 한 고의가 있었다”며 “그럼에도 피해자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점을 기초로 이들이 아동·청소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문제”라고 했다.

이 후보자는 성범죄자에 대한 잇단 감형 판결로 도마에 오른 상태다. 2020년 서울고법 제8형사부 재판장으로 있을 무렵 12세 아동을 세 차례 성폭행하고 가학적인 성행위를 해 기소된 B씨의 형량을 ‘개선, 교화의 여지가 남아 있는 20대 젊은 나이’라는 이유 등으로 징역 10년에서 7년으로 줄였다. 피해자가 ‘엄한 처벌’을 원하는데도 피고인의 사정을 고려해 감형한 경우도 있다. 피해자의 뒤를 밟은 C씨가 아파트 공동현관에서 피해자를 껴안으려 했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장기간 불안감에 시달린 피해자는 C씨가 엄벌에 처하길 원했지만, 2020년 9월 당시 서울고법 제8형사부 재판장이던 이 후보자는 피고인이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성실하게 회사생활을 해왔다’며 형량을 징역 1년3개월에서 징역 1년3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줄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지난 8일 성명을 내고 “이 후보자는 다수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심각하게 결여된 판결을 해왔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친분관계를 우선시하여 성인지 감수성과 성평등 관점이 결여된 대법원장 후보를 지명한 것에 심각한 우려와 반대 의사를 표한다”고 했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