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개막 연극 ‘더 파더’ 전무송… 딸 현아씨와 한 무대 연기경력 60년·30년 실제 부녀 배우 전씨, 건강악화로 ‘무대인생 끝’ 절망 대본 받고선 ‘일어나야지’ 생각 번쩍 부친 돌보는 강인한 딸역할 현아씨 “극중 권위적 부친, 실제로는 딸바보 연습 때 아버지 보고 눈물 나 힘들어”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건물 3층에 들어서니 오는 19일 개막하는 연극 ‘더 파더’ 연습이 한창이었다.
극 중 ‘안느’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 ‘앙드레’의 오열에 “울지 마”라고 다독이면서 앙드레를 껴안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제 괜찮아질 거야. 우리 닭고기 먹자. 좋지? 아빠 닭고기 좋아하잖아”라고 하면서.
연극 ‘더 파더’에서 치매에 걸린 아버지 앙드레 역을 맡은 배우 전무송. 스튜디오 반 제공
연습 중간중간 안느 역의 전현아(52)는 앙드레 역을 맡은 전무송(82)에게 다가가 비타민 음료를 건넸다. 올 초 건강 악화로 병석에 있던 전무송이 4월에 ‘더 파더’ 대본을 본 뒤 생애 마지막 연기 혼을 불사르겠다고 하자 아내가 만들어 준 건강 음료를 딸이 챙겨 와 마시도록 한 것이다. 전무송은 이날 연습 후 인터뷰에서 “아파서 치료받을 때 ‘(연극 인생도) 이제 끝나나 보다. 무대에 더 이상 못 서겠구나’ 하고 절망적이었는데 대본을 받아보곤 ‘왜 쓰러져. 일어나야지’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면서 “연극 내용이 또 병자(치매 환자)라 ‘잘됐다. 그럼 이거 하고 죽자’는 각오로 하게 됐다”며 웃었다.
전무송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는 연극 ‘더 파더’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프랑스 극작가 겸 소설가, 영화감독인 플로리앙 젤레르의 가족 3부작(‘아버지’, ‘어머니’, ‘아들’) 중 하나로 2012년 작품이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일상을 보내던 80세 노인 앙드레가 치매로 기억의 혼란을 겪으면서 자신의 일상이 뒤틀리는 와중에서도 인간적 품위를 지키려고 애쓰는 과정을 섬세한 심리 묘사로 그려 냈다. 프랑스 몰리에르상, 영국 로런스 올리비에상, 미국 토니상 등 권위 있는 상을 휩쓸었다. 젤레르가 직접 각색·연출하고 주연 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은 동명 영화(2020)로도 유명하다.
국내에선 2016년 국립극단이 ‘아버지’(박정희 연출·박근형 주연)로 초연했고, 이번에는 극단 ‘스튜디오 반’ 작품(이강선 연출)으로 관객과 만난다.
오는 19일 개막하는 연극 ‘더 파더’에서 20년 만에 극 중 부녀 역할로 함께 무대에 서는 전무송(오른쪽)과 전현아가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실제 아버지와 딸이 하는 연기라 사실감 있게 느껴진다. 스튜디오 반 제공
특히 실제 아버지와 딸로 연기 경력만 각각 60년·30년에 달하는 전무송과 전현아가 한 무대에 올라 기대감이 높다. 두 사람이 극 중 아버지와 딸로 함께하는 건 2003년 ‘당신, 안녕’(윤대성 극작) 이후 20년 만이다. 전현아는 “‘당신, 안녕’에선 둘이 마주하는 장면이 극히 짧아 부담이 없었는데, ‘더 파더’에선 아버지를 가장 옆에서 지켜보며 끝까지 돌보려 하는 딸 역할이라 어렵다”며 “강인한 ‘안느’와 달리 아버지(전무송)를 보고 있으면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해 참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연습 초반 극적인 부분에서 울음이 몇 차례 터져 이강선 연출이 “안느는 울면 안 된다”고 당부했을 정도라고.
작품 속과 실제 부녀 관계의 닮은 점과 다른 점에 대해 전현아가 “딸이 아버지를 극진히 생각하는 게 닮았다”고 하자, 전무송은 “그건 아니지, 맨날 연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야단치면서”라고 웃으며 부정했다. 이어 전현아가 “다른 점은 극 중 아버지가 권위적이고 딸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지 않는데 비해 실제 아버지는 딸 바보다. 자상하시다”라고 하자, 전무송은 “그래 그건 인정한다. 얘 시집갈 때 내가 한 3일을 울었다”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전통음악을 공부하던 전현아가 배우가 되기로 한 것도 존경하는 아버지의 길을 따르고 싶어서였을 만큼 둘은 돈독한 부녀 관계를 자랑한다.
오는 19일 개막하는 연극 ‘더 파더’에서 20년 만에 극 중 부녀 역할로 함께 무대에 서는 전무송(왼쪽)과 전현아가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실제 아버지와 딸이 하는 연기라 사실감 있게 느껴진다. 스튜디오 반 제공
연극 ‘더 파더’는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까. 전현아는 “단지 치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 간 관계 회복과 용서, 화합을 얘기한다”며 “앙드레 입장에선 하나씩 지워지는 기억들을 어떻게든 붙잡아서 존엄한 인간으로 가려고(눈감으려고) 하는 것 같은 모습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무송은 “사실 치매를 안 겪어 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모른다”면서도 “치매를 본인이나 주변 사람이 희로애락처럼 삶의 연장선 중 하나로 인정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온갖 사정으로 힘들어도) 다들 용기 있게 힘을 내서 각자 해야 할 일을 다했으면 한다”고 했다. 공연은 10월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