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시간·진앙 얕아 인명 피해 커…맨손 곡괭이 구조에 절규
“집, 배처럼 움직이다 무너져”
“보안군도 헌병도 오지 않아”
산사태·진흙길…구조대 늦어
여진 공포, 밭·공터서 밤새워
당국은 최소 120명 사망 추정
주민들 “구급차 절실” 호소도
대지진이 모로코 중부를 강타한 지 이틀째. 가족과 친지, 이웃을 잃은 이들의 통곡과 절규가 곳곳에서 메아리쳤다.
천년고도 마라케시에서 남쪽으로 55㎞가량 떨어진 아틀라스산맥 기슭의 아미즈미즈 마을. 알자지라에 따르면 구조대원들은 9일(현지시간) 맨손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들어올렸다. 병원 밖에는 담요에 싸인 시신 10여구가 놓여 있었다. 유족이 슬픔에 찬 얼굴로 주변에 서 있었다. 무너진 건물 아래 팬케이크처럼 납작해진 가재도구가 튀어나와 있었고 무너지지 않은 건물도 온통 금이 가 있었다. 주민들이 오후부터 간단한 도구를 들고나와 구조작업에 동참했다. 마을 전체에 곡괭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젯밤 우리는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집이 배처럼 앞뒤로 움직이다가 무너졌습니다. 그 아래 네 아이와 아내, 내가 있었습니다. 구멍을 파서 겨우 살아나왔습니다.” 압델라티프 바제르(55)의 눈은 피로한 기색과 눈물로 가득했다고 르몽드가 전했다. 바제르는 전날 밤부터 구조작업을 도왔다. 그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보안군도, 헌병도 오지 않았다. 다행히 이곳 사람들은 함께 살아남은 것을 축하하고 불행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아미즈미즈 마을은 진앙과 가까워 지진 피해가 컸다. 당국은 인구 2만명 가운데 최소 100~120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산사태가 발생해 바위가 떨어져 마을 진입로를 막았고, 길은 진흙탕이 돼 구조대 도착이 늦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생존자들은 살아남았다는 안도를 느낄 새도 없었다. 모하메드 아조우는 “발밑의 땅이 흔들리고 집이 기울어지는 걸 느껴 서둘러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내 이웃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안타깝게도 그 가족 중 살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마라케시에 사는 기즈레인 엘 카디는 이날 새벽 자동차를 몰고 아미즈미즈로 와 사촌들이 이모의 시신을 찾는 광경을 지켜봤다. 이모의 시신이 발견되자 장례 준비를 도왔다. 주민들은 “이 마을에서 17번째 장례식”이라고 했다. 오마르 바바는 “우리는 매우 가난하다. 더 이상 집도 없고, 음식도 없다. 직장, 학교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해가 지자 주민들은 담요를 휘감고 올리브밭이나 공터, 광장에 모였다. 도심에서는 케이터링 업체가 임시 급식소를 차렸다. 여진이 두려워 주민들은 모두 전날부터 길에서 밤을 지새웠다. 여성 자원봉사자들이 난로 몇개를 사용해 병아리콩 수프와 쿠스쿠스를 만들어 나눠줬다.
외신들은 아틀라스산맥 곳곳에서 들려오는 절망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위르가네 마을에 사는 모하메드(50)는 이번 지진으로 가족 4명을 잃었다. 그는 CNN에 “두 아이를 데리고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나머지는 모두 잃었다. 집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후다 우다사프는 “내 가족 중 적어도 10명이 사망했다. 이틀 전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이날 모로코 국영TV에는 “무스타파, 하산, 일헴, 기즈레인, 일리스…. 내가 가진 모든 걸 잃었다. 나는 혼자”라며 숨진 남편과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는 여성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지진을 겪은 이들은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마라케시에 사는 미나 메티오위는 “전투기 소리 같은 굉음이 울렸다”면서 “몇분 같았던 시간이 1초 정도였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건물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BBC에 말했다.
도움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산악 마을 물레이 브라힘 주민 토우디테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고통받고 있다”며 “구급차가 절실히 필요하다. 앰뷸런스를 보내달라”고 했다. 현재 진앙 주변 산악지역으로 통하는 비포장 도로는 낙석으로 막혀 구조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고속도로 또한 구급차, 택시, 적십자사 차량으로 혼잡한 상황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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