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생로병사 해탈한 존재, 그의 이름은
올해 합계출산율이 0.7명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항상 핵심을 벗어나는 정책만 내놓던 정부가 이번에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자녀 돌봄의 부담을 낮춰서 출산을 유도하려 해도 가사도우미를 구하기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드니, 이주노동자를 데려와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하고 월 급여를 100만원 이내로 한다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비난이 거세지자 법안은 철회되었지만 사업 자체는 시행된다.
지난 1일 국무조정실은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추진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송출 국가와의 협의를 거쳐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100명 규모로 시작할 예정이다. 사업체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여 서비스 신청 가구로 파견하는 방식이라 안타깝게도(!) 최저임금제도나 근로기준법을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원래의 목표, 즉 ‘저렴한 비용’이 빛을 잃을까 우려한 정부는 시간당 1만5000원 내외인 현재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성별이나 국적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했음에도 정부가 앞장서 꼼수를 찾고 있다.
내국인 노동자보다는 낮지만 본국에 비하면 임금이 높은 것이니 이주노동자에게도 괜찮은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로봇청소기가 아니라 사람이다. 일이 끝나면 주인님 집 한구석에서 조용히 충전하며 대기할 수는 없다. 생명을 유지하려면 무언가를 먹어야 하고, 한국 사회에서 일을 하려면 휴대전화가 있어야 하며, 걸어서 출퇴근하지 않는 이상 교통비를 지출해야 한다. 한국의 혹독한 겨울을 버티려면 패딩점퍼 등 외투나 목도리, 장갑도 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씻고 자고 쉴 수 있는 주거 공간이 있어야 한다. 가사서비스 수요가 많은 대도시, 수도권일수록 주거비가 비싸고 구하기도 쉽지 않다. 서울시청 광장에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숙소를 지을 수도 없다. 생활은 본국에서 하고 일은 한국에서 하면 딱이겠지만, 아직 순간이동 기술은 개발되지 않았다.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러 온 특별한 분들이니 저임금으로도 생활할 수 있도록 특별 할인제도라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이날 국무조정실은 이주노동자의 고용을 확대하는 다른 대책들도 함께 발표했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 때문에 내국인 노동자가 빠져나간 자리를 이주노동자로 채우고 있다. 더 나은 근로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을 찾아 나서는 전략이다. 이러다 보니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한 비율은 공식 통계로 잡힌 것만도 내국인 노동자의 두 배에 달한다.
이미 이주노동자 없이는 깻잎 한 장, 김치 한쪽도 먹을 수 없다. 배를 만들고 아파트를 세우는 것도, 공장을 가동하는 것도 어렵다. 가족을 간병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업무 외에는 인간으로서 어떤 ‘생활’도 ‘욕구’도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고용계약이 끝나면 한시도 한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1975년 출판된 <제7의 인간>에서 존 버거와 장 모르는 부유한 서유럽 국가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불사(不死)의 존재’라고 표현했다. 끊임없이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죽음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 덕분에 이득을 얻는 선진국들은 그들이 노동력을 생성하는 데 드는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나이가 들어 일할 수 없게 되었을 때의 부양 경비 또한 부담하지 않는다. “그들은 태어나지도 않으며, 양육되지도 않으며, 나이 먹지도 않으며, 지치지도 않으며, 죽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 하나의 기능-일하는 것-을 가질 뿐이다. 그들의 삶의 다른 모든 기능들은 그들의 출신 국가의 책임이다.”
50년 전 지구 반대편에서의 통렬한 비판은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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