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협치 요구를 거둬야 할 때
현 정부 출범 1주년 즈음에 실시한 한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취임 1년 동안 여론에서 언급된 윤석열 대통령 연관어 중에서 상위 다섯 개가 순서대로 민주당, 국민, 이재명, 김건희, 문재인이었다. 이 중 ‘국민’을 제외하면 모두 물의를 일으켜 이슈가 되거나 윤석열 정부가 대립각을 세워 공격하거나 비난한 대상이다. 이후 다시 4개월이 지났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정부가 정책을 언급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국민’을 입에 올리는 것도 정상은 아니다. 기본적인 것은 구태여 언급하지 않아도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주 언급되거나 이슈가 된다는 것은 그 기본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아마도 ‘국민’이라는 단어는 요즘 정치계에서 가장 자주 언급하는 단어일 것이다. 정부부터가 그렇다. 오히려 그 실제 내용은 국민의 의사나 이익에 반하기 일쑤다. 특히 일본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일본을 역성든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강제징용 배상과 핵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고, 홍범도 장군 폄훼에 이르면 할 말을 잃는다. ‘나가도 너무 나간다’는 푸념이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들린다.
과거에 보수는 진보 진영에 이념을 덧씌우고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그런데 이제는 보수 진영이 이념을 내세우며 수용하지 않을 경우 비과학, 가짜뉴스, 괴담, 선동으로 몰아간다. 1990년대 이래 현실 공산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자본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을 밟아 왔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공산주의의 유령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현 정부와 국민의힘에 ‘용산 자유주의’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공산 전체주의자’일 뿐 협치의 대상이 아니다.
더 나아가 윤미향 의원 징계안 제출에서 보듯이 용산 자유주의를 수용하지 않으면 반국가행위를 일삼는 사람일 뿐 아니라 ‘국민’의 자격조차 없는 사람으로 몰아간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국가이며, 자신들의 지지자만이 국민이다. 지지자가 아닌 모든 사람을 전체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또 다른 전체주의다. ‘용산 전체주의’라는 표현이 입길에 오르내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박정훈 대령을 항명과 명예훼손으로 기소한 것도 ‘용산 전체주의’의 산물이다. 외압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외압에 항명했다는 비과학적, 비논리적 주장을 내세운다. 항명을 주장할수록 외압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꼴이다. 한 병사, 한 국민의 안타까운 죽음이 권력에 의해 묻혀 가고 있다.
언론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도 매카시즘과 다름없다. ‘바이든’이라 말하고 ‘날리면’으로 우긴 사건을 통해 정부는 가짜뉴스와 통제, 조작의 힘을 톡톡히 실감했기 때문일까. 자신을 국무위원으로 착각하는 방송통신위원장을 내세워 통제의 고삐를 바싹 조이고 있다.
제1야당 대표의 단식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물론 뜬금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단식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해야 할 이유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내 활동을 다했는지, 다른 합리적 방법을 충분히 시도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를 단식으로 몰아간 근본적 원인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있다. 총체적으로 대화를 거부했고 종국적으론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협치를 할 수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정부 출범 초기엔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협치를 희망하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제는 접을 때가 되었고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권력층이나 지배계층이 도전과 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자신들의 권력을 더욱 강화해 상대나 피지배층에 대한 통제력을 확대하는 방법이다. 다른 한 가지는 자신의 조직과 성격을 개혁해 상대나 피지배층으로부터 동의와 양보를 얻어내는 방법이다. 봉건제 사회와 독재 권력이 종종 그러했듯이 첫 번째 방법은 극단적 대립과 억압으로 인해 체제가 붕괴되는 결과로 치닫는다. 그에 비해 두 번째 방법은 체제와 지배 질서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안이다. 하지만 자신의 권력도 일부 내어놓아야 한다. 현 정부가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을까.
마하트마 간디는 원칙 없는 정치를 가장 큰 일곱 가지 죄의 하나로 꼽았다. 그러나 인격 없는 지식과 인성 없는 과학도 그 죄의 하나라 했다. 핵 오염수 처리에서 보듯 과학이란 이름으로 생명권을 위협하고, 이태원 참사 대응에서 보듯 책임에 대한 검찰 지식을 비인격적 통치에 활용하고 있다. 이념보다 실용을 외치던 대선 후보가 이념 없인 실용도 없다고 외치는 대통령이 되었다. 사람과 실용을 도외시한 원칙과 이념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우리는 어느 나라 국민보다 처절히 경험하지 않았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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