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무릎

기자 2023. 9. 1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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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도 무릎이 있던가 뼈와 뼈 사이에 둥근 언덕이 박혀 있다 무릎을 꺾으니 계단이 되었다 꿇는 줄도 모르고 무릎 꿇은 일 적지 않았으리라

2.
달콤한 샘에 입 대기 위해 나비는 무릎을 꿇는다 무릎을 접지 않고 어찌 문이 열리랴 금동부처의 사타구니 사이로 머리 내미는 검은 달

3.
사람이 사람의 무릎 꿇리는 건 나쁜 일이다

4.
무릎이 다 닳아 새가 된 사람을 너는 안다 쌀자루를 이고 다니다 무릎이 다 녹은 것이다 나비처럼 너는 언덕을 넘고 싶다 검은 달을 향해 컹컹, 너는 짖어본다

(장옥관 1955~)

시인은 물을 마시기 위해 샘에 입을 맞추는 나비에게서 무릎을 본다. 나도 무릎을 접어본다. 무릎은 베고 누울 수도 있고, 놀라서 탁! 칠 수도 있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꿇을 수도 있다. 무릎과 꿇다 사이에 ‘가지런히’라는 부사를 넣으면 비굴함은 공손함으로 바뀐다. 무릎이 없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공손하게 인사할까?

시인은 ‘쌀자루를 이고’ 다니다가 ‘무릎이 다 녹은’ 한 사람을 보여준다. 나도 시인과 함께 검은 달을 향해 컹컹 짖는다. 무릎 안의 ‘검은 달’을 꺼내서 언덕 위로 밀고 올라간다. 언덕 위에서는 새소리가 들리고, 언덕 아래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린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시간의 문양이 새겨진 무릎은 눈보라의 기억을, 검게 탄 장판의 기억을, 미끄러운 계단의 기억을 품고 있다. 무릎은 말한다. 당신, 함부로 무릎 꿇지 마요! 검은 달이 죽어요. 파도가 죽어요.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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