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열차가 지연되는 이유
철도노조가 민영화 반대 파업을 예고하며 8월24일부터 준법투쟁에 돌입했다. 준법투쟁은 작업규정과 휴식시간을 지키고, 초과근무를 거부하는 방식이다. 즉 ‘법대로 매뉴얼대로’ 안전운행을 하겠다는 것인데도 벌써 열차 지연이 발생한다. 역사 안에는 “철도노조의 태업으로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방송이 반복된다. 철도공사는 이를 ‘태업’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정해진 규칙대로 일하는 것만으로 ‘정시운행’의 철칙은 작동되지 않는다. 만성적 인력부족으로 초과노동을 밥먹듯이 하고, 아파도 연차 사용이나 병가를 사용하지 못하고, 안전매뉴얼을 위반하며 작업속도를 올리는 것이 현장의 ‘노하우’가 되는 철도현장에서 ‘정시운행’이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더 많이 내어주어야만 가능한 편법의 결과일 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철도 경쟁체제’ 도입은 지난 20여년간 진행된 철도 민영화 과정 중에 놓여 있다. 철도 민영화는 철마다 옷을 갈아입듯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이름과 방식을 달리하며 계속되었다. 김대중 정부의 ‘철도 매각을 통한 민영화’가 노동자들의 저항과 반대여론의 악화로 무산된 이후 역대 정부에서 ‘민영화’ 대신 ‘공공 선진화’ ‘민간 경쟁체제 도입’ 등의 이름으로 지속적인 민영화가 추진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영화는 ‘매각’이라는 최종적 결과가 아니라, ‘공공성의 점진적 붕괴’를 향한 과정으로 의미가 변화되었다.
철도 민영화 과정은 거대한 고래를 부위별로 해체해 경매에 넘기는 방식과 닮았다. 살아 있는 고래를 작살로 죽이는 것은 폭력이지만, 죽은 고래를 해체해 거래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처럼, 철도는 우선 회복불능의 무능력한 조직으로 비난받아야 했다.
철도는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다. 건설과 운영, 관제와 운행, 그리고 유지보수 업무 등이 모두 하나의 연결된 체계로 작동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방만경영’의 산물로 지목돼 분할, 해체의 대상이 되는 과정이 지난 20여년간 이뤄졌다. 1999년 철도의 시설과 운영을 분리했고, 2013년에는 흑자노선인 수서발 노선을 자회사인 SR(주)을 설립해 떼어냈다. 시설관리나 매표업무, 유지보수 업무가 외주화되고, 새로 건설되는 철도 노선에는 민간자본의 투자가 이뤄졌다.
‘방만경영’이라는 낙인은 모든 업무를 ‘핵심 업무’와 ‘비핵심 업무’로 분할해 외주화의 근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철도를 구성하는 모든 노동이 방만경영의 증거가 되었다. 노동집약적인 철도산업의 특성은 사라지고 인건비 절감이 ‘공공혁신’의 이름으로 이뤄지면서 인력부족이 만성화되었다. 때마다 발생하는 철도사고는 철도노동자의 과로를 해결하고 시설 투자를 하는 대신 ‘철도경영 부실’의 근거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지난 20년간 철도노조는 민영화를 막기 위해 파업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열차는 지연되었지만 민영화 역시 지연되었다. 또 다른 방식으로 지연되기도 했다. 철도 선로 유지보수 업무를 하던 하청노동자들이 열차에 치여 사망할 때 열차는 아주 잠깐 멈췄다. 그럼에도 민영화는 중단되지 않았다. 그래서 또 파업이다. 파업은 시민들이 열차가 지연되는 이유를 궁금해하길 바라는 철도노동자들의 열망이기 때문이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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