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사회운동은 다른 길, 다른 희망도 있다는 걸 보여줘야
“사회운동이 이명박 정부 아래서 주어질 단기적 역할에 만족하여 과거의 관성적 정부 비판형 운동패턴을 반복한다면 희망은 없다. 이 점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손쉬운 비판에 만족하지 말고 자신에 대한 성찰을 더욱 배가하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 사회운동, 시민운동이 보수정부의 실정을 즐기는 안이한 반대파로 머물러서는 정권을 교체할 수 있을지언정, 민주국가, 평화국가의 길을 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사무실 선배가 사회운동에 대해 쓴 글(‘시민과세계’ 13호)의 일부다. 노무현 정부를 겪으며 위기에 처한 사회운동이 이명박 정부를 맞아 안온한 비판이나 관성적 저항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성찰에 기반해 생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불행히도 당시 운동이 글의 바람대로 흘러가지는 못했다. 윗글이 쓰인 직후, 사회운동은 ‘광우병 반대’를 중심으로 ‘반MB전선’을 형성하며 심판과 퇴진을 조직했다. 다양한 정치·운동세력은 광장의 힘을 동력 삼아 ‘진보’를 기치로 대규모 연합·연대에 나섰다. 그러나 수차례 치러진 선거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따끔한 심판도, 정권교체도 어느 하나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뚜렷한 사회적 대안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세력으로 거듭나지도 못했다. 진보세력은 “안이한 반대파” 역할에 만족하며, 이합집산하며 총체적으로 소진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세월호’라는 계기, 박근혜 정부의 실정은 운동의 또 다른 결집점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안팎에서 요구되어왔던 성찰이나 혁신, 대안적 전망을 향한 노력은 또다시 유예되었다. 사회운동은 2016년 촛불집회를 통해 이명박 정부 이래 10여년간 그토록 소망했던 ‘시민의 단결된 힘을 통한 전복’을 이뤄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운동의 부흥과 승리를 뜻하지 않는다. 닥쳐올 파국에 앞선 일시적 호황기거나 앙상한 겨울을 앞두고 화려하게 만개하는 가을에 가깝다. 화려한 촛불의 위용에 위기는 감춰졌다.
시간만 흐를 뿐 운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이후 15년, 다시 제자리로 온 듯한 불안이 엄습한다. 총선에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을 벼르고 있는 사회운동에 실패한 운동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정말 시민들이 ‘심판’을 바라고 있을까? 갈길 잃은 분노가 아무것도 생성하지도, 해결하지도 못하는 심판과 퇴진에 고이는 것은 사회운동이 처한 위기의 한 증상일 것이다.
사회운동은 기존의 운동문법, ‘진보’라는 허구적 구심력, 연대로 둔갑한 진영주의를 거부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퇴행적 공세에 기꺼이 맞서되 “안이한 반대파”를 경계하며, 함께 나아가되 새로운 전환의 전망을 연대의 중심에 둬야 한다. 사회운동은 냉소하는 시민, 분노하는 시민 모두에게 다른 길, 다른 희망도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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