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해바라기는 해를 바라보지 않는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온갖 열매들이 살을 찌우고 있다. ‘해바라기’도 그런 열매 중 하나다. 해바라기는 ‘꽃이 해를 바라본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해바라기의 두상화(頭狀花)가 해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피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지는 해를 따라 봉오리를 움직이는 꽃은 세상에 없다. 해바라기도 마찬가지로, 꽃대가 해를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아주 비과학적인 얘기다. 특히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이 무렵에 잘 여문 해바라기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지 못하고 땅 쪽으로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다. 해바라기는 한자말 항일규(向日葵)를 그대로 옮긴 것이지, 실제로 해를 따라 봉오리가 움직인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서양에서도 해바라기는 ‘해를 닮은 꽃’으로 불린다.
우리말 중에 ‘-바라기’가 붙은 말에는 ‘개밥바라기’도 있다. 흔히 샛별로도 불리는 ‘금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만 개밥바라기의 ‘바라기’에는 바라본다는 의미가 없다. 이때의 바라기는 “음식을 담는 조그마한 사기그릇”을 뜻한다. 즉 개밥바라기는 “개의 밥그릇”이다.
금성은 지구의 바로 앞에서 태양의 주위를 돈다. 이 별이 초저녁 하늘에 비치면 한자말로는 장경성(長庚星)이나 태백성(太白星)이라 하고, 순우리말로는 개밥바라기라 한다. 개가 자기 밥그릇에 음식이 채워지기를 바라는 때에 뜨는 별이라는 의미다. 우리 선조들의 해학이 번뜩이는 작명이다. 금성은 명성(明星) 또는 계명성(啓明星)으로도 불리며, 새벽에 뜨는 것을 ‘샛별’이라고 한다.
요즘 주변에서 ‘딸바보’ ‘오빠바보’ 같은 말들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바보’는 “지능이 부족해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거나 욕하며 부르는 말이다. 딸을 위하고, 오빠를 좋아하는 의미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바보’보다는 ‘바라기’가 훨씬 좋다. 물론 이때의 바라기는 개밥바라기의 바라기가 아니다. 우리 옛 문헌에도 나오는, “한쪽만 바라보는 사람”을 뜻하는 바라기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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