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저출생 해결 방법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대책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추진
인권 침해, 노동력 착취, 갑질 우려 있어
아이 직접 돌보는 시간 보장하는 것 필요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몇 년 전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공고문을 뒤적뒤적 거렸어요. 공고문 중에는 베이비시터 알바 공고문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그 당시 시급이 8000원 대였는데, 베이비시터 알바 시급은 1만 원 대였어요. 하지만 베이비시터 알바를 쉽게 구하지 못하는지 공고문은 항상 상단에 떠있었죠. 양육자는 직장에 출근해야 하고, 아이들은 어리고, 돌봐줄 사람은 마땅치 않으니 베이비시터를 구해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인데요. 아이를 키우는 일은 까다롭고 힘들기 때문인지 높은 시급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잘 구해지지 않는 것 같았어요.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이었습니다. 이는 아주 이례적인 숫자인데요. 더 떨어질 곳도 없을 것 같았던 합계출산율은 올해 2분기 0.7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숫자입니다. 우리나라는 여성 한 명이 평생 아이를 1명 미만으로 출산한다는 의미인데요.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가장 낮습니다. 2021년 기준 OECD 회원국의 합계출산율 평균은 1.58명으로 한국을 제외한 37개국 모두 1명 이상입니다.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를 넘어 인구 소멸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낮은 출생률의 원인으로 다양한 분석이 나왔는데요. 애초에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청년이 늘었습니다. 통계청의 연구결과를 보면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청년은 35.4%뿐이었고, 결혼 후 아이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도 53.5%였죠. 육아휴직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출산 후 여성들이 원래 일하던 직장·직급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력 단절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만들었습니다. 가사노동이 잘 분담되지 않는 것도 양육에 대한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여러 원인이 겹겹이 쌓이며 합계출산율 0.7명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저출생 대책 일환으로 지난 7월 31일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지난해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제안하면서 이슈로 떠오른 정책인데요. 지난 3월에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전제로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는 가사법 개정안을 발의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5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지시했고, 이후 정책은 빠르게 추진됐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비전문 취업비자(E-9)에 가사 서비스 분야를 확대하고 이르면 올해 안에 필리핀 등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여 명을 국내에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시행한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만약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이 실시된다면 이들은 최저임금제 적용을 받으며 최소 6개월 이상 서울시 가정에서 일하게 될 예정입니다.
▮돌봄 결핍, 우리나라만의 문제일까?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난항을 겪는 나라는 비단 우리나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 지구적으로 ‘돌봄 결핍’을 앓고 있는데요. 이른바 선진국에서 여성들의 노동 참여가 늘어나며 가정에서 노인과 자녀를 돌볼 일손이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돌봄 결핍·돌봄 위기(care crisis) 현상이 나타나고 있죠. 이 때문에 저임금 돌봄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외국인 보모, 외국인 가정부가 돼 이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돌봄은 가족 내 무급 여성의 노동으로 여겨졌습니다. 가정에 묶여 집안일을 하던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하기 시작하자 돌봄 결핍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죠. 여성의 부재로 생겨난 돌봄 위기는 돌봄 시장에 나온 또 다른 여성의 돌봄 노동을 사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돌봄 노동은 일부 시장화되는 과정에서도 ‘여성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저임금 서비스 노동으로 분류됐습니다. 이 때문에 다른 일자리들처럼 체계를 갖추지 못했고, 저임금이나 열악한 고용조건도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저임금 외국인 가사노동자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에서 예상되는 문제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에서 2017년 실시한 ‘이주가사노동자 노동인권실태조사’에 의하면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82%가 입주제였으며, 입주제로 일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중 86%가 주 6일 동안 노동해야 했습니다. 62%가 하루 16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렸죠. 그럼에도 200만 원 이하의 급여를 받는 가사노동자는 74%에 달했고, 150만 원 이하의 초저임금도 11%나 차지했습니다. 조사 결과에서 나타나듯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휴게 시간 없는 장시간 노동과 초저임금 등으로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돼 있었습니다.
정해진 장소와 업무가 있는 산업 분야의 노동과 달리 가사노동자의 노동은 애매하고 복잡합니다. 한국노총중앙연구원과 유니온의 공동조사 결과에서 가사·돌봄노동자가 업무 수행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조사한 결과 ▷명확하지 않는 업무 범위 39.5% ▷임금수준 24.3% ▷휴게시간·식사시간 보장 13.8% ▷4대보험 가입 11.2% ▷노동시간 7.9%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한국어가 서툰 이주여성에게는 더욱 열악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비전문 취업비자에 가사 서비스 분야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비전문 취업비자의 체류 가능 여부는 고용 상태와 연동돼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이주노동자가 사업자에게 종속되는 문제가 있죠. 사업장 변경을 위해서는 사용자의 정당한 사유가 있거나, 휴업·폐업되거나, 사업장 근무 곤란을 증명해야 합니다.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고 한국의 법과 제도를 잘 알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는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입증하는 것이 아주 어렵습니다. 고용 가정과의 관계가 체류비자와 연관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착취와 학대에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동대 손화철(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는 “고용관계는 대등한 시민 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며 “국내 체류 자체가 고용주와의 관계에 달려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불안하고,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불안정성 때문에 특정한 집안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게 될 확률이 높고 고용주는 그 사람의 노동이 아닌 한 사람의 존재, 혹은 시간 전체를 사는 셈이 되는데 이는 다름 아닌 노예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정교한 장치가 필요한데 현재 정부는 경제적인 유익만을 강조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밝혔죠. 손 교수는 “이미 농업과 공업 분야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심각한데 가사노동자는 더 심각하다”며 “집에서 아이를 돌보기 때문에 분쟁의 소지도 많고,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이 많이 되기 때문에 인종차별적 편견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충고했습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고용자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대해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하고 초저임금을 지급하자는 발언이 뭇매를 맞자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대해서도 최저임금을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저임금을 적용했을 시 가사노동자의 월급으로 월 200만 원 정도를 지출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가사노동자의 월급으로만 월 200만 원을 지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가구 수는 제한적이죠.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거주지를 따로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비스 제공 기관에서 근로자 숙소를 제공하겠다는 것인데요.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초기 정착비용은 지원하지만, 숙소비용은 근로자가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가사노동자의 월급을 지급할 수 있을 정도의 가정에 가사노동자를 파견하기 위해 다른 시민들의 세금이 쓰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손 교수는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부유한 이들은 유익을 볼 수 있다”며 “하지만 결국에는 착취를 막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해질 것이고, 그 비용은 모두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돌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돌봄’이란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상당할 정도의 숙련도와 노련함이 필요한 가치 있는 일이란 사실을 인정받지 못했죠. 가사노동이나 아동 돌보기, 노인 돌봄 등은 특별한 숙련이나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고 ‘온순하고 순종적인 제3세계 여성’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간주됐습니다. 저임금이나 열악한 고용조건도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은 전문직에 종사했던 여성 또한 자신의 능력이 평가절하되는 탈숙련(de-skilling)의 장벽에 부딪히거나, 돌봄과 같은 일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천부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이화여대 이주희(사회학과) 교수는 “돌봄 노동을 쉬운 일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아이 직접 돌볼 여유 필요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전국 성인 15~59세 2만2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양육자의 일하는 시간은 그대로 유지하고 주로 서비스나 타인의 도움을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것’과 ‘양육자의 직접 돌봄이 이루어지도록 주로 일하는 시간에 대폭 변화를 주는 지원을 하는 것’ 중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도 분석했는데요. 그 결과 ‘자녀를 직접 돌보는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일관되게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노동시간을 줄이고, 양육부담을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국가 차원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가족 휴직·휴가 제도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충고했습니다. 손 교수는 “보육 시설과 사회보장을 늘려 빈부와 무관하게 모든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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