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약자복지’하겠다더니 지원 예산 대폭 깎은 윤석열 정부
내년 정부 국고보조사업에서 약자 지원 예산이 대거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기재부 ‘2023년 국고보조사업 연장평가 보고서’를 보면 노인·아동·청소년·장애인 예산이 집중 삭감되면서 278개 사업 중 176개(63.3%)가 폐지·통폐합 또는 감축 판정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선거 매표 예산을 배격해 절약한 재원으로 서민과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껍게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정부의 예산편성은 그의 말과 거꾸로 가고 있다. ‘약자복지’는 결국 말잔치에 불과했던 것인가.
구체적으로 보면, 노인요양시설 확충 사업 예산은 필요성이 인정된다는데도 올해 547억원에서 내년 215억원으로 절반 넘게 깎였다.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어린이집 확충, 청소년 학교폭력 예방 예산도 삭감됐다. 장애인 복지시설의 기능보강 사업도 263억원에서 236억원으로 축소됐다. 가정폭력·성폭력 재발방지사업은 “국고지원 타당성이 있다”는 평가단의 최종평가에도 불구하고 사업예산 약 12억원 전액이 삭감됐다. 정부는 사업 중복 또는 성과를 평가할 지표가 미흡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다. 장기적 실행이 필요한 복지정책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효율성 잣대만 들이댄 것 아니고 뭔가.
정부의 지출 기조는 예산 전반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22조원대였던 임대주택지원 예산은 내년 증가분을 합쳐도 17조원대에 그쳐 물량 감소가 명백하다. 고용노동부는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고용장려금도 재검토하겠다고 한다. 올해 60조원 안팎의 세수펑크가 예상되자 초긴축 예산 편성으로 대응하면서 복지지출을 최대한 졸라매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감세와 재정건전성을 동시에 내세울 때부터 우려돼온 바다. 재정의 효율적 지출은 정부의 책무이나, 효율성 자체가 ‘정언명령’이어선 안 된다. 경기침체의 고통은 취약계층에 더 무겁고 후유증도 깊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외환위기 때 배우지 않았던가.
올해 상반기 자살자가 전년 동기 대비 8.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면서 코로나19 이후 한국사회의 부족한 사회안전망이 재확인되고 있다. 이 와중에 있던 안전망까지 걷어치우는 것은 정부의 도리가 아니다. 정부 예산은 곧 정책의지다. 약자복지를 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약속이 허울 좋은 말잔치에 그치지 않으려면 취약계층과 공공인프라 예산은 함부로 삭감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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