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살예방의 날’ 실태 진단 2021년 3만4961명 10년간 65%↑ 2018년 후 매년 3만명 이상 발생 전국 정신과 병상 2년 새 1만개 ↓ 24시간 응급실 상담사 11곳 불과 양천구선 병원 못 찾아 극단 선택 “정신과 응급인원 병상 통합관리를”
서울 한 파출소에 근무하고 있는 이모 경위는 지난달 자살시도자 조치로 애를 먹었다. 밤 10시쯤 흉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자살시도자를 응급입원 시키려고 했는데, 관련 기관 아무 데서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자타해 위험이 있어 2인 1조로 화장실까지 동행하며 해당 자살시도자를 밀착 감시하면서 파출소에서 보호조치를 했다. 이 경위는 다음 날 오전 8시가 돼서야 자살시도자를 병원으로 인계할 수 있었다.
경찰이 야간이나 휴일에 자살시도자를 응급입원 시킬 정신과 병상이 없어 난처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찰이 제 역할을 다해도 자살 시도자의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없는 경우가 적잖게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살시도자 발생 시 의료기관으로 연계할 수 있는 통합적 시스템을 하루속히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5월 서울 양천구에서는 자살 위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6시간 동안 150여통의 전화를 걸어 수소문했는데도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상을 찾지 못해 귀가 조치 했다가, 자살시도자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인천 한 지구대에서 근무했던 유모 순경은 “인천의 경우 응급입원을 관제하는 센터가 있지만 야간에는 전화 연결도 어려울뿐더러, 통화가 이뤄지더라도 바로 입원 가능한 병실이 있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유 순경은 “신고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이 자살시도자 보호에 묶인다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세계 자살예방의 날인 10일 보건복지부가 낸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1년 자해·자살시도자 수는 3만4961명으로 10년 전인 2011년 2만1237명과 비교했을 때 64.6%가량(1만3724명) 증가했다. 또한 연간 자해·자살시도자 수가 2018년이래 해마다 3만명 이상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오히려 정신과 병상은 감소하고 있다. 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가 지난 5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전국 6만2000여개였던 정신과 병상은 2023년 5만1000여개로 2년 새 1만개 이상 줄었다.
통계로 봤을 땐 병상 개수가 많아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전진용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전체 병상 개수보다 실제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은 더 적을 수 있다”며 “대학병원이나 야간 당직이 있는 일부 정신과 병원이 아니면 주간에만 입원을 받는 곳이 있어 야간에는 서울에서도 경기도까지 병상을 찾아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상에 환자를 성별로 구분해서 받는데 가령 병상 개수가 3개여도 여자 병상만 남아 있는 상황이라면 남성은 응급입원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복지부가 2013년 도입한 응급실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에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해당 사업은 정신과 병상에 입원이 어렵더라도 외상으로 응급실을 찾은 자살시도자를 병원에 상주하고 있는 상담사가 사례관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24시간 운영되고 있는 곳은 전국 11곳으로 광역기초자치단체별로 1곳 수준이었고, 심지어 제주에는 아예 없었다.
전문가들은 정신과 응급입원 가능 병상을 관리하는 시스템부터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현재 응급실에서 가용 가능한 병상을 실시간으로 살필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된 것처럼 정신과 응급입원 가능 병상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 역시 “지금은 자살시도자 1명을 입원시키려면 주간에도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 20명이 1시간 동안 병원에 일일이 전화를 돌려야 간신히 병상을 찾을 수 있다”며 “병상 숫자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과 병상을 관리하는 통합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신과 응급 인력에 대한 보상도 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 교수는 “최근 민간병원은 입원 병상을 잘 운영하지 않으려고 하고 병상이 있어도 야간 당직을 서는 경우가 드물다”며 “낮은 수가를 비롯한 여러 문제로 대부분 중증환자를 보기보단 상담 분야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기승전‘수가’처럼 보여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과거에는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사회가 돌아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권 교수 역시 정신과 폐쇄병동이 주는 추세를 지적하며 수지타산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자살시도자의 경우 폐쇄병동에 입원하는데 일반병동과 달리 24시간 환자를 관찰할 간호사와 안전요원이 필요해 폐쇄병동 운영은 무조건 마이너스인 상황”이라며 “자살 재시도 위험성이 큰 기간만이라도 수가를 올려줘야 병상이 줄어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병상과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건강 혁신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을 알고 있고 응급 병상과 의사 인력 확충, 정신건강 분야 투자 증진을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