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울릉도의 대변신 에피소드<1>‘엘도라도 익스프레스’가 울릉도에 온 사연은

2023. 9. 1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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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표 전 재경울릉 향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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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형 호화 쾌속여객선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가 포항에서 울릉도 도동항까지 214km2시간50분만에 항해하는데 비해 난 부산 송도항에서 대마도까지 49.5km를 강고배(작은 고기잡이배)24시간 항해했던 젊은 날의 추억이 있다.

항해의 목적은 둘 다 분명한데 하나는 연락선(連絡船)으로 내고향 울릉도를 찾아가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밀항선(密航船)으로 일본 대마도에 가는 것이었다.

엘도라도호가 3000t이 넘는 선박인데 비해 강고배는 1~2t도 못되는 나무로 만든 작은 고기잡이 배다. 60년 전 피 끓던 젊은 청춘시절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바다와 배에 대해 짙게 묻어있는 나의 개인사다.

대한민국 도서지방을 운항하는 여객선이 여러 항로를 통해 한 곳에 이렇게 많이 몰리는 곳이 울릉도 말고 또 있을까? 울릉도로 가는 사람들과 모든 물류의 내왕 지점이자 관문인 포항과 묵호항, 강릉항 그리고 울진의 후포항 등에서 많은 사람들과 화물이 이동하고 있다.

불과 몇 해 전부터 일어난 일이다. 과히 호화 여객선의 전성시대라 할만하다. 그 중에 2만톤에 가까운 크루즈선이 무려 두 척이나 있다.

2~3년 후면 울릉공항이 완공되어 배 멀미 없이 한 시간대로 다닐 수 있게 되는 날이 바로 목전에 와 있는데도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멋진 여객선이 또 하나 취항을 한 것이다.

울릉도 주민에게 우선적으로 승선권을 주는 공모선으로 화려하게 태어난 것이다. 호주 테즈매니아주 호바트시의 인켓조선소에서 만든 초쾌속선 엘도라도 익스프레스다.

3158t급이며 전장이 76.7m, 전폭 20.6m 규모로 여객정원 970명과 일반화물 25t을 싣고 최대속도 45노트의 속력으로 운항할 수 있도록 설계된 최신형 여객선이 엘도라도 익스프레스다.

비즈니스는 물론 퍼스트석도 마련되어 있고 좌석간의 공간도 넓게 만든 신조선이라고 한다. 이 배가 호주에서 긴 항해 끝에 포항을 거쳐 울릉도에 입항했다.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

울릉도에 새로운 여객선사(旅客船史)를 쓰는 신기원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2023629일 남한권(南漢權)군수를 비롯한 많은 울릉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울릉(사동)항에서 감격스러운 취항식이 있었다.

울릉도 뱃길 142년 만에 이뤄진 새로운 역사이며 세계에서 제일 빠른 여객선이라고 칭송이 자자하다.

19958월에 취항하여 선령 만기로 2020년 퇴역할 때까지 울릉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썬플라워호의 빈자리를 두고 어떻게 할 것인지 주민들의 갈등과 정부에 대한 절규와 호소가 이어졌다.

공모선 선정을 위한 홍성근 비대위위원장을 비롯한 많은 주민들이 서울의 국회의사당, 포항 해수청, 도동공원 등에서 대형 카페리 공모선 건조를 위해 수년간 투쟁한 결과 드디어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는 신조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울릉도 삶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42년의 역사라고 하나 내 나이 80이니 돌아가신 어르신들의 나이를 더하면 엊그제 같은 짧은 세월이다.

마치 나 자신이 울릉도 개척사에 한 자리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야말로 짧은 세월이다. 1882년 조선고종 19년 울릉도 개척령을 선포한 이듬해 1883년 나의 증조할아버지 홍재찬(洪在璨)과 그의 동생 홍재현(洪在現) 할아버지가 강릉에서 울릉도로 입도하게 되었다.

어떤 연유로 울릉도에 입도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동학란에 가담하였다가 도망 온 것이라고 들은바 있다. 그러나 전봉준이 동학란을 일으킨 것이 1894년이니 믿을 만한 후일담은 아닌 것 같다.

독도의용수비대장 홍순칠(洪淳七)의 할아버지가 홍재현 옹이다. 나는 초등학교를 끝으로 일찍 육지로 나왔고 1960년대 대학시절에는 여름과 겨울방학에 늘 여객선을 이용하여 고향으로 들어가곤 했었다.

우린 연락선(連絡船)이라고 했다. 열흘이고 보름이고 풍랑으로 인해 배가 뜨지 못하다가 출항 허가가 떨어지면 기를 쓰고 배에 올라 목적지에 가려는 일념만 있었지 지금처럼 편안한 의자에 앉아 쾌적한 기분으로 짧은 시간 여행하는 여객선과는 차원이 달랐다.

몇 달에 한 번씩 들어오는 연락선이지만 배가 언제 들어오는지 어린 우리는 알 수가 없었다. 갯바위에서 낚시도 하고 헤엄치고 뛰놀면서 큰 배가 들어오는 것이 보이면 도동 부두를 향해 손을 흔들며 연락선이 들어온다고 양손을 흔들며 고함을 치곤했었다.

왜 그렇게 발을 굴리면서 좋아했는지 지금도 연락선하면 그때가 떠오른다. 내가 살던 집이 부둣가에 있었는데 배가 들어오면 제일 먼저 달려가 배가 항구(항구라고 하지만 접안 부두 없이 그냥 바다에 앵커로 고정한 채 떠있는 상황)로 접안하는 모습과 하시게(전마선)에서 가방과 보따리를 들고 내리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 또한 유년시절의 일상이었다.

당시에는 목선 화물선인 천양환(天洋丸)이 보통 스무 시간 이상의 항해 끝에 도동항에 도착하곤 했는데 여객선이 많이 다니지 않았던 터라 화물선 짐짝 사이에 끼어서 밤을 지새우고 고향으로 오는 것이 다반사였다.

고작 100t 남짓한 목선이 망망대해를 곡예 하듯이 흔들리며 항해하였으니 울릉인의 용맹성은 아마 이런 것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날의 15천톤 급 대형 여객선인 울릉썬플라워크루즈나 2만톤 급의 울릉크루즈와 비교해보면 정말 격세지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6.25가 끝나고 알마크호가 도동항에 자주 입항을 했다. 낮은 높이에 안정적으로 보인 철선으로 미국에서 원조 받은 것이라고 했는데 한 번도 타보지 못했지만 내 뇌리에는 도동항에 정박해 있던 알마크호가 선명히 남아있다.

1964년 청룡호 모습(홍상표씨 제공)

내게 연락선은 금파호와 청룡호다. ‘카바이트 긴상이라고 불리던 김만수씨 소유였던 금파호는 150t 정도의 목선으로 포항에서 도동항까지 16시간이나 걸렸지만 당시로는 유일한 정기선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한 달에 서너 차례뿐이었지만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처음 고향에 다녀왔을 때 탔던 배가 금파호였다. 귀청을 찢을 것만 같은 요란한 기계 소리와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기름 냄새는 구토가 나올 같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배에 타자마자 아래층으로 내려가 맨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드러눕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바닥 여기저기에는 빈 깡통이 놓여있고 웩웩 하는 소리와 냄새로 인해 다들 고통스러웠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 열악한 현실을 우리 모두는 너무나 당연히 받아드리며 섬과 육지로 이동해왔다.

1980년도 즈음에는 강원도 임원에서 울릉도로 가는 여객선이 있었다. 코모도호였다. 직접 타보지 못했지만 천부 수력발전소를 세웠던 이정윤이라는 분이 여러 지인들과 함께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몇 해 운영도 못한 채 사업을 접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린 그를 울릉도의 걸물이라고 불렀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그가 국회의원에 입후보하여 지금의 군청에서 개표하던 것이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코모도 사장 이정윤은 또 하나의 걸물인 친동생 이정기를 두고 있었다. 1960년 초반 즈음이다. 어느 날 우연히 읽은 잡지에 밀수왕 이정기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대마도에서 부산을 왕래하며 시계와 TV를 밀수하고 있는 이정기씨를 정부가 자수를 권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울릉도 사나이가 밀수왕이라니 당시 내겐 큰 충격이면서도 은근히 자랑스러웠던 생각이 난다.

랬던 그 이정기씨가 밀항으로 체포되어 대마도(對馬島) 이즈하라 형무소에 수감되어있던 나를 면회 온 것이었다. 밀항이 잠잠해지던 때에 고향이 울릉도인 젊은이 둘이 잡혀있다고 하여 왔다는 것이었다.

리고 나의 큰형과 친구라고 하면서 속내의 몇 벌을 넣어주고는 조심해서 잘 다녀가라면서 헤어졌다. 1968년 찌는 듯이 덥고 습한 일본 대마도의 7월이었다.

그 후 이즈하라(?原)에서 후꾸오카(福岡)를 거쳐 오무라(大村)수용소로 이동한 후 일본선적의 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하였으니 내게 연락선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자유를 찾는 긴 여정이라고 혼자 중얼대던 생각이 난다.

남한권 군수는 취임하자마자 울릉도 첫 세일즈로 서울의 조희연교육감을 만나 수학여행단 유치와 전국시도교육감 회의를 개최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수학여행하면 세월호 침몰이 연상되어 망설여졌을 텐데도 울릉도로 보내달라고 자신 있게 요청한 이면에는 클루즈선과 엘도라도 익스프레스같은 안전하고 멋진 여객선이 뒤를 받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다.

전국에서 가장 눈이 많이 내리는 울릉도의 겨울축제도 이들이 있어 겨울 바다의 높은 파고를 이겨내고 관광객을 실어 나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울릉도의 여객선이 천양환, 영풍호, 금파호와 청룡호 그리고 썬플라워호로 이어져 오면서 이제 새로운 여객선 엘도라도 익스프레스가 새로운 한 획을 그을 수 있게 됐다.

그것도 중고선박이 아니라 그야말로 신조선으로 말이다. 언제 우리가 이런 신조선을 탈 것으로 상상이라도 해 보았겠는가? 울릉도의 밝은 미래가 기대되며 울릉도가 변신하는 첫 신호탄이 될 것 같다.

울사모 편집장, 에세이스트 홍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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