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잠든 밤 순식간에 와르르… “사망자 1만명 달할 수도” [모로코 120년 만의 강진]

이지안 2023. 9. 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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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2000명 사망… 피해 왜 컸나
대부분 지진 취약한 진흙 벽돌집
고지대 산악 지역… 구조도 난항
맨손으로 잔해 뒤지며 수색나서
주민들은 여진 우려에 ‘광장 노숙’
美·튀르키예 등 G20 지원 의사
국교 단절한 알제리도 동참 밝혀

“10초 만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지난 8일(현지시간) 발생한 규모 6.8의 강진으로 폐허가 된 모로코 산간 마을 물레이 브라힘의 주민 아유브 투디테는 10일 AP통신에 지진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이들 산간 지역의 주택 대다수가 지진에 취약한 진흙 벽돌집인 탓에 순식간에 건물이 붕괴하며 피해 규모가 커진 것으로 분석됐다.
망연자실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9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지진으로 파괴된 자신의 집 옆에서 오열하고 있다. 마라케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71㎞ 떨어진 지점에서 전날 밤늦게 규모 6.8의 강진이 발생해 마라케시부터 수도 라바트까지 곳곳에서 피해가 잇따랐다. 마라케시=AFP연합뉴스
지난 2월 튀르키예·시리아를 덮친 강진 때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이 잠든 심야에 지진이 발생한 점도 신속한 대피에 걸림돌로 작용하며 피해를 키운 가운데,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1만명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됐다.

이날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의 인명·경제 피해 규모가 애초 예상보다 훨씬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 추정치 평가를 ‘적색경보’로 조정하고, 이번 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1만명 미만일 가능성이 35%로 가장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1만명을 넘어 10만명에 이를 가능성도 21%에 이르며, 10만명 이상이 될 확률은 6%라고 전망했다. 경제 손실 규모의 경우 10억∼100억달러(약 1조3370억∼13조3700억원)에 이를 가능성이 37%로 가장 높았고, 100억∼1000억달러에 이를 확률도 24%로 추산됐다.

9일(현지시간) 지진으로 무너져내린 모로코 마라케시 인근 마을 주택의 모습. 전날 밤 마라케시 서남쪽 약 71km 지점에서 규모 6.8의 강진이 발생해 2천명 이상이 사망했다. 마라케시=AP연합뉴스
USGS는 지진 직후 인명 피해 수준을 적색에서 두 단계 낮은 ‘황색경보’로, 경제 피해 수준은 한 단계 낮은 ‘주황색 경보’로 판단했으나 이를 상향했다. USGS도 상향 이유로 피해 지역 대다수의 건물이 지진에 취약한 ‘어도비(지푸라기와 섞어 벽돌을 만드는 데 쓰이는 진흙)’ 벽돌로 지어진 점을 짚었다. 전통가옥 형태인 어도비 가옥에 내진 설계가 되어 있을 턱도 없다. 1960년 모로코 남서부 해안 도시 아가디르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으로 도시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만5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이 당시에도 지진에 취약한 건축물 구조가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인명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인 72시간 내의 구조가 시급하지만, 이들 산간 지역은 교통 접근성도 낮아 구급차 통행마저 어려운 상황이라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진앙 인근 지역의 구조대는 장비 부족으로 무너져 내린 주택 잔해를 맨손으로 뒤지며 수색 작업에 나서고 있다.

마라케시 등 시내에서는 마찬가지로 지진에 취약한 석재 건물들이 우르르 무너졌다. 현지 주민들과 마라케시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두려움에 떨며 집이나 숙소로 돌아가지 못하고 길거리와 광장에서 밤을 새웠다. 마라케시의 관광명소였던 제마 엘프나 광장은 순식간에 이들의 피난처가 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9일(현지시간) 모로코 우아르자자트에서 지진이 발생한 후 주민들이 광장으로 대피해 있다. 우아르자자트=신화뉴시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모인 각국 지도자들은 앞다퉈 지원 의사를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9일 성명을 통해 “우리 행정부는 모로코 당국자들과 접촉하고 있다”며 “우리는 모로코 국민을 위해 필요한 어떤 지원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올해 초 5만명이 사망한 강진 참사를 겪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도 “모든 수단을 다해 모로코 형제들을 지원하겠다”는 연대의 뜻을 밝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메시지를 전했다.

모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나 서사하라 지역 영토 분쟁 문제로 2021년 국교를 단절한 알제리는 폐쇄 상태였던 영공을 개방해 인도적 지원과 의료 목적의 비행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지진의 진동은 알제리와 바다 건너 스페인·포르투갈에서까지 감지됐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모로코 정부는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지원 의사에 사의를 전했으나 아직 필요한 공식 지원 요청은 하지 않고 있다.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6세는 9일 사흘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이지안 기자 ea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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