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公기관장 인선 지연에 국정 `동맥경화`

이준기 2023. 9. 10. 19: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후임 못 정해 업무공백 수두룩
임원·직원 인사 정체 조직 이완
기계연·표준연·과기원 공모 잡음
최근 들어 과학기술계 새 기관장 인선이 연이어 재공모로 결정되는 등 파열음을 낳고 있다.

임기가 만료된 공공기관장 인선이 제 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조직의 동력이 떨어지고 정책의 동맥경화가 유발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기관장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상당기간 중요한 의사결정을 못한 채 일상업무만 수행할 수밖에 없어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수행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후속 임원과 직원 인사까지 늦어져 조직이 극도로 이완되는 상황이다.

10일 과학계에 따르면 최근 진행된 4곳의 새 기관장 공모에서 3배수 후보를 뽑아 놓고도 선임이 이뤄지지 않아 재공모키로 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기계연구원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지난 5월 3배수 후보자 확정 이후, 세 달 가까이 최종 인선이 미뤄져 왔다. 이후 기계연은 지난달 9일, 표준연은 지난 7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재공모를 결정했다. 재적이사 과반수 득표기준을 충족한 후보자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기계연은 공모가 불발된 지 한 달 넘도록 재공모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출연연 관계자는 "3배수 후보자를 뽑아 놓고도 최종 인선이 길어지게 되면, 대부분 재공모로 가닥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럴 거면 일찌감치 재공모를 실시해 기관장 업무 공백을 최소화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4대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인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공모도 불발돼 재공모가 진행 중이다. DGIST 이사회는 지난달 7일 3배수 후보자 중 과반수 득표 기준을 충족한 후보자가 없어 2주 뒤인 18일부터 재공모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임기가 만료된 국양 총장이 최소 11월까지 임기를 이어가게 됐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3배수 후보자 확정 이후 인선을 하지 못해 재공모에 들어가 지난 7월에야 임기철 현 원장을 선임했다. 임 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을 지내다가 사퇴 압박을 받아 중도 사퇴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소관 기관인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은 지난해 12월 황용수 원장이 직원 갑질 논란으로 중도 사임한 이후, 지금까지 차기 원장을 선임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3배수 후보자를 선출했지만, 이마저 과반수 득표를 얻은 후보자가 없어 부결된 이후 재공모에 착수해 새로운 3배수 후보자를 확정하고, 인사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차기 원자력통제기술원장에는 외교 안보 분야에 근무한 모 인사가 선임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른 공기관도 사정은 비슷하다. 총리실 산하 여러 연구회는 여권의 눈치를 보며 기관장 인선을 늦추고 있다. 이들은 기관장 임기종료 3개월전부터 후임자 인선까지 최소 6개월간 윤 정부의 국정과제를 실행할 새로운 업무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전력은 올해 5월 정승일 전 사장의 사퇴로 빚어진 사장 공백사태가 이달에야 해소된다. 한전은 18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김동철 전 의원을 선임한다. 이인호 무역보험공사 사장과 김정렬 한국국토정보공사 사장은 임기가 만료됐으나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사장직을 수행 중이다. 이 사장은 정부 고위직 발탁설이 나온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단지공단,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도 기관장 임기 만료 후 새 기관장 취임까지 3개월 이상 소요됐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최고사령관은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데,전투 현장을 지휘할 책임자가 정해지 않아 전투원들이 참호 속에서 낮잠을 자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과학계의 한 인사는 "지금까지 기관장 공모 사례를 볼 때, 앞으로는 외부 인사들이 대거 기관장에 선임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쪽으로 무게가 이동하는 것 같다"며 "재공모에 들어간 표준연의 경우에는 벌써부터 모 대학교수를 원장에 앉히기 위해 재공모가 이뤄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고 말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주주총회나 정치적 이유 등으로 늦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미룬 채 일상적인 일밖에 할 수 없다"며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이준기·정석준기자 bongchu@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