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부리 겨누던 적국서 '최고 파트너'로… 중국 견제 위해 손잡은 미국-베트남

허경주 2023. 9. 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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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베트남이 외교 관계를 격상하고 반도체 공급망 구축 등 경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베트남 방문에서 양국 관계를 2013년 맺은 경제 중심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경제·정치 등 다방면에서 긴밀하게 협력하는 '전략적 동반자'로 한 단계 높이는 방안에 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외교가 관계자는 "관계 격상 이면에는 미국이 중국 영향력 강화에 맞서며 남중국해에서 균형을 잡아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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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 10일 베트남 국빈 방문
최고 수준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체결
한때 적국에서 대중 포위망 좁히려 '맞손'
1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양국 외교 관계 격상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하노이=AFP 연합뉴스

미국과 베트남이 외교 관계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하고 반도체 공급망 구축 등 경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반세기 전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반목의 역사를 뒤로 하고, 경제·문화 분야 협력을 뛰어 넘어 군사·안보 분야까지 손을 맞잡는 ‘최고 파트너’가 되기로 한 셈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위협이 커지자 ‘대(對)중국 견제 전선 확대’라는 공통의 이해를 위해 손을 맞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대통령 중 다섯 번째 방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일 오후 베트남 권력서열 1위 응우옌푸쫑 공산당 총비서(서기장) 초청으로 베트남을 국빈 방문했다. 두 정상은 한 시간 넘는 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를 가장 높은 수준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베트남은 대외협력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전략적 협력 동반자→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구분한다. 양국은 베트남 전쟁(1960~1975) 이후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가 1995년 7월 국교를 정상화했다. 이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3년에야 가장 낮은 수준인 경제 중심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10일 낮 베트남 하노이에서 시민들이 국빈방문 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그러나 10년만에 두 번째 단계를 건너뛰고 국방·외교 안보 분야 협력을 망라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파트너십을 맺게 된 셈이다. 양자 관계를 한 단계 올리는데 통상 수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2단계 격상’은 그야말로 파격이다.

그간 베트남이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건 한국, 중국, 러시아, 인도뿐이었다. 바이든 정부가 먼저 외교 관계 격상을 제안하고 수개월간 설득 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합의 후 “미국과 베트남 관계는 전쟁의 쓰라린 과거로부터 발전했다”며 “양국 관계는 50년간의 갈등에서 정상화를 거쳐 이제 새로운 단계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10일 베트남 하노이 공산당 본부에서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총서기가 회담을 하고 있다. 하노이=AP 연합뉴스

경제·안보 측면 상호 ‘윈윈’

미국이 50여 년 전 쓰라린 패퇴를 안겼던 전쟁 상대국의 손을 맞잡은 것은 중국 견제를 위해서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미국 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규정하고 동맹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1년 1월 취임 이후 다자 안보 협의체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와 쿼드(Quad·미국 호주 인도 일본)를 출범시킨 게 대표적이다. 지난달 18일에도 한미일 정상이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공조 강화방안을 논의하는 등 연일 대중국 포위망을 좁히고 있다. 이에 더해 이번 베트남 국빈 방문으로 중국 턱밑의 동남아시아 핵심 국가를 포섭, 인도·태평양 안보 체제 전략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베트남도 미국이 내민 손길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중국은 베트남의 사회주의 우방이지만, 동시에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10년 넘게 치열한 갈등을 빚는 국가다. 베트남 외교가 관계자는 “관계 격상 이면에는 미국이 중국 영향력 강화에 맞서며 남중국해에서 균형을 잡아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방문을 하루 앞둔 9일 베트남 하노이 중심가의 한 옷가게에 바이든 대통령의 얼굴 등이 그려진 티셔츠가 걸려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경제 측면에서도 ‘윈윈’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미 당국자들을 인용해 “전 세계에서 중국에 이어 베트남이 최다 매장량을 보유한 주요 광물, 특히 희토류 공급망 강화가 회담 핵심 이슈가 될 것”이라며 “희토류 합의가 예상된다”고 전했다.

베트남은 막대한 반도체 기술 지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 국빈 방문에는 인텔, 구글, 글로벌 파운드리, 앰코 테크놀로지 등 미국 주요 반도체·기술 기업 고위 관계자가 대거 동행했다. 대부분 베트남에 이미 투자했거나 투자 계획을 발표한 곳이다. 베트남 입장에선 자체 반도체 생산 공장을 세우겠다는 오랜 숙원 사업의 물꼬가 트이는 셈이다.

다만 미국과의 관계 격상이 강대국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베트남의 ‘대나무 외교’ 기조를 완전히 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베트남 정부가 20년에 걸쳐 러시아 무기 80억 달러(약 10조7,000억 원)어치를 사들이는 비밀 협상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중국에 대항해 군사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풀이되지만, 러시아와의 무기 거래는 미국의 대러 제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조치이기도 하다. 미국의 목전에서 ‘독자 외교 노선을 고수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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