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개혁대안과 연금개혁의 새로운 방향

한겨레 2023. 9. 1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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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국민연금 개편 논란]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국민운동(연금행동)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공청회에서 재정계산위를 규탄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재정계산위원회는 이날 공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 관련 보고서를 공개했다. 복지부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정부 개혁안이 담긴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기고] 김원섭 | 한국연금학회 회장·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 1일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를 열고 연금개혁안 보고서를 공개하였다. 재정계산은 개혁의 핵심 이슈인 국민연금의 재정 상태를 점검하고 재정불안을 불식시킬 수 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발표된 결과물을 볼 때 연금개혁을 통해 재정불안이 불식될 것이라는 애초 기대는 충족되기 어려워 보인다. 여기에서 재정계산 결과에 대한 회의론을 검토하고 개혁 방향을 재검토하고자 한다.

재정계산위원회는 국민연금 기금소진 연도를 직전 추계보다 2년 앞당겨진 2055년으로 추계하였다. 나아가 위원회는 재정악화에 대응하여 보험료를 인상하고(12%, 15%, 18%), 현재 65살인 연금수급 개시 연령을 연장하고(66~68살), 기금수익을 개선하는(0.5~1%포인트) 세가지 방법을 조합한 18개의 정책개선 시나리오를 제시하였다.

하지만 위원회 일부 위원을 포함한 다수 전문가들이 재정계산 결과를 비판하고 있고, 국민은 더 많은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비판은 주로 정책대안의 실현 가능성이 낮은 점을 겨냥한다. 우선, 18개나 제시된 대안 시나리오는 선택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보험료 인상을 18%까지 높게 제안한 것도 현실적으로 국민이 수용하기 어렵다. 더 논란이 된 것은 모든 개혁 대안이 보험료의 추가적 부담을 요구하면서, 급여 개선(인상)은 배제한 점이다. 또한 기초연금의 지급 대상 조정을 시사한 것도 국민연금 제도에 한정된 위원회의 법적 임무를 넘어선다.

이런 점에서, 향후 연금개혁을 담당하게 될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아래와 같은 방향성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개혁 대안은 급여 개선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연금제도의 목표는 노후소득을 보장하여 노년의 빈곤을 방지하는 것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40%(중위소득의 50%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다만 노인빈곤의 완화에는 국민연금보다 기초연금 급여를 인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2023년 현재 노인 중 국민연금 노령연금을 수급하는 사람은 43%에 불과하고, 2040년에도 64%에 머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많은 노인들은 급여인상 효과를 누리지 못한다. 더구나 급여인상은 가입자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국민연금에 더는 가입할 수 없는 현 노인세대도 연금 인상에서 배제된다. 이에 비해, 기초연금을 인상하면 현재와 미래 모든 세대의 취약계층 노인들이 즉각적으로 혜택을 받는다. 나아가 기초연금 지급 대상을 현행 소득 하위 70%에서 전체 노인으로 확대할 경우, 모든 국민연금 수급자의 연금소득도 올라간다.

둘째,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를 보험료와 기금수익만으로 달성하려는 것은 공적연금의 원리에 벗어난다.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생활 보장을 시장과 가족에 맡기지 않고 국가가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국가는 노후소득보장을 정부의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보험료뿐 아니라 일반재정을 동원한다. 역사상 최초인 독일 국민연금 재원에서 정부지원금의 비중은 가입자의 보험료 비중보다 오히려 컸다. 독일의 2021년 정부지원금은 연금 지출의 약 23%에 달할 정도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법적인 지급보장을 명시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장기적인 재정지출 계획을 연금개혁에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연금개혁 논의 과정에서 연금재정의 불안정을 과장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2020년 우리나라의 공적연금(국민연금, 특수직역, 기초연금) 총지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3.5%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최하위 수준이고 이들 국가의 평균인 9.2%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친다. 또한 고령화가 진전된 2060년에도 연금 지출액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평균인 11%를 넘지 않을 전망이다.

우리나라 노인은 세계에서 드물게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정착을 성취한 세대이다. 이들의 성취를 빈곤으로 처벌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더구나 열악한 연금제도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노인빈곤은 젊은 세대에 대물림될 것이다. 조속한 연금개혁을 통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다수가 노년기에 빈곤으로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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