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머리 깎기에 성공한 독일 의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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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와 출마는 다르지만, 어떻게 보면 정치인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거의 스님과 맞먹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독일 비례대표제의 핵심은 의회 내 교섭단체 간의 권력 분배가 정당 득표율에 최대한 근접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실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 선거제도가 독일정치의 안정성과 국민 만족도 향상에 기여했다.
독일 의회 의원들이 제 머리를 깎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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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세계의 창] 하네스 모슬러(강미노) |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 교수
출가와 출마는 다르지만, 어떻게 보면 정치인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거의 스님과 맞먹는 노력을 해야 한다. 참된 정치인은 세속적인 유혹을 떨치고, 성숙한 정신으로 개인적인 이익을 넘어 공동체와 사회에 헌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정치인이 많아 국민이 실망하기 일쑤다.
예외도 있다. 올해 초 선거법 개정에 성공한 독일 정치인들이 그런 경우다. 2021년 선거 때 의석 정수 598석이 736석까지 늘어나 그 후유증이 적지 않았는데 기존 선거법을 획기적으로 개정한 것이다.
팽창 원인은 독일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도의 독특한 이중적 선출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독일 비례대표제의 핵심은 의회 내 교섭단체 간의 권력 분배가 정당 득표율에 최대한 근접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유권자들의 투표로 표현된 민의를 가급적 정확하게 반영해 의회의 대의 기능을 최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평등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치세력들의 원내 진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승자독식 정치갈등을 예방하고 합의 민주주의의 협치 문화를 구축한다는 접근이다.
동시에 국민과 국민대표의 좀 더 밀접한 관계를 어느 정도 보장하기 위해 각 지역구에서 대표 한명씩을 뽑는다. 즉, 지역구 후보와 지지 정당 1인 2표제로 299개 지역구에서 최다 득표자 1명씩을 선출하고, 여기에 16개 주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299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단, 전체 의석 분포는 정당 득표율에만 좌우된다.
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가장 좋은 융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실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 선거제도가 독일정치의 안정성과 국민 만족도 향상에 기여했다. 하지만 1994년부터 이른바 초과의석(Überhangmandat)이 이례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초과의석은 지역구 당선자의 원내진출을 보장하기 위해 지역구 당선자가 정당 득표율에 비해 많은 정당이 추가로 배분받는 의석이다. 예를 들어 정당 득표율이 20%(비례대표 60명)인데 전체 지역구의 25%(75곳)에서 1위를 했다면 지역구 당선자 15명은 의원이 되지 못하는데, 그만큼 의석을 추가 할당해준다.
문제는 이로 인해 비례성의 왜곡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초과의석이 생긴 정당은 정당 득표율보다 더 많은 의석을 얻게 됐기 때문이다. 해결책으로 2013년부터 한 정당이 초과의석을 받은 만큼 나머지 정당들도 의석을 추가로 배분받도록 하는 보정의석(Ausgleichsmandat) 제도가 도입되었다.
결국 총 의석수가 걷잡을 수 없이 팽창하여 의회 운영 자체가 어려워졌다. 눈 뜨고 도둑을 피하려다 강도를 만나는 격이다. 어설픈 땜질식 대응은 놀랍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선출 방식은 기성 정당과 의원들의 이해관계에 직접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이 난제를 상당 부분 풀었다는 것은 뜻밖의 소식이었다. 사민당, 녹색당, 자민당 등 연립정부 소속 정당들 주도로 발의되어 올해 6월부터 시행된 개정 선거법은 초과·보정의석제를 폐지하고 의원 정수를 아예 630명으로 고정했다. 지역구 의석수 299개를 그대로 둠으로써 비례 의석은 32개 추가된 셈이다. 즉, 연방의회의 골병을 치료하고 비례대표제를 한층 강화한 개혁이었다.
물론 개정은 완벽하지 못하고 일부 야당에서는 반발도 했다. 하지만 이번 개혁은 결국 모든 정당에 똑같이 절제를 요구하고 연방의회의 매우 비합리적인 부풀림 문제를 제거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독일 의회 의원들이 제 머리를 깎은 셈이다.
내년 총선을 앞둔 한국도 선거법 개정이 시급한 당면과제다. 국회의원들이 이번에도 자기 개혁을 거부하면, 국민이 정치인들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직접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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