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흰 짝퉁이야" 명문대 축제서 `원세대.조려대` 지방캠퍼스 조롱

박양수 2023. 9. 1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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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대 지방캠퍼스를 멸시하는 멸칭 '원세대·조려대' 재현
고려대 총학생회장, 세종캠퍼스 재학생을 '학우' 아닌' 입장객' 표현
"내가 더 노력했는데 같은 대우받는 건 '불공정' 생각"
지난해 열린 고연전의 모습. [연합뉴스]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혐오 표현 [에브리타임 캡처]

"니넨 그냥 짝퉁이야. 연고전 와서 사진 찍고 인스타 올리면 니가 정품 되는 것 같지?"

대학가의 대표적인 가을 축제인 고연전(연고전)이 열리는 과정에서 '본교·분교'를 구분하는 해묵은 차별·혐오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내 갈등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8∼9일 열린 고연전을 앞두고 사학 명문인 고려대와 연세대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 행사 참여 '자격'을 두고 지방캠퍼스에 다니는 학생들에 대한 차별적 발언과 노골적인 멸시가 드러나면서다.

지난 7일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의 자유게시판에는 연세대 서울 신촌캠퍼스 재학생으로 추정되는 누리꾼이 '원세대 조려대'라는 제목으로 두 학교의 분교생을 깎아내리는 게시글을 게재했다.

원세대와 조려대라는 표현은 각각 연세대와 고려대의 지방캠퍼스를 멸시하면서 부르는 오래된 명칭이다. 원주시에 있는 연세대 미래캠퍼스와 세종시 조치원읍의 고려대 세종캠퍼스를 지칭한다.

해당 글 작성자는 "연고전 와서 사진 찍고 인스타 올리면 니가 정품 되는 거 같지?"라며 "니넨 그냥 짝퉁이야 저능아들"이라고 조롱했다.

고려대 재학생과 졸업생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의 게시판에서도 지난 5일 '세종(세종캠퍼스 학생)은 왜 멸시받으면서 꾸역꾸역 기차나 버스 타고 서울 와서 고연전 참석하려는 거임?'이란 글이 게시됐다. 이 글을 보는 당사자에겐 큰 모멸감을 줄 수 있는, 노골적인 언어 폭력이다.

지난 4일에는 고려대 서울캠퍼스 학생들의 노골적인 차별에 분개한 세종캠퍼스 총학생회가 대자보를 두 캠퍼스에 붙였다. 앞서 세종캠퍼스대 총학은 대자보를 통해 지난 5월 고려대 응원제인 '입실렌티'를 준비하면서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장이 세종캠퍼스 재학생을 '학우'가 아닌 '입장객'으로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세종캠퍼스 총학은 이 '입장객'이라는 표현을 두고 "세종캠퍼스 학생을 학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본교생의 우월적 태도는 익명 게시판에만 그치지 않는다. 고려대 서울캠퍼스 재학생 구모(24)씨는 10일 "입학 성적도 매우 다르고 각 학교의 구성원의 학업 성취도 역시 매우 다르기 때문에 우리 학교의 일부라기보다는 아예 다른 학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신촌캠퍼스 공학계열 학과의 이모(27)씨는 "이름만 같고 아예 다른 학교인데 왜 본교의 이점을 취하려고 드는지 잘 모르겠다. 자신들의 수능 점수를 까먹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입학 성적이 차이나기 때문에 '명문대생', '명문대 출신'이라는 사회적 타이틀을 함께 누리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고려대 세종캠퍼스의 모 재학생은 "성적에 따라 대학과 사람의 계급을 나누는 사회 풍조가 대학 사회로 흘러들어왔다고 생각한다"며 "매해 이런 일이 반복되니 분노를 넘어 체념했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기성세대가 생각했던 '공정'보다 2030세대 젊은 계층의 기준이 더욱 엄격해졌다"며 "자신은 1시간이라도 더 공부해서 입학했는데 왜 분교생이 동등한 권리를 가져가느냐고 의문을 품고 분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학벌주의의 축소판인 '캠퍼스의 계급화'는 대학가에선 오래 된 일이다. 지난 2021년 고려대 세종캠퍼스 재학생 A씨가 서울캠퍼스 총학 비상대책위원회 임원으로 선임되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A씨의 이름과 사진 등이 공개됐다. 이 사건으로 인해 비상대책위는 결국 학칙 재심의를 거쳐 A씨의 임원 임명을 무효로 했다.

일부 본교 학생들은 졸업장, 졸업증명서에 지방캠퍼스를 따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등학교 때 성적만을 능력이라고 보고 서로를 구분 짓는 건 우려스러운 착각"이라며 "수년 전에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대입 성적 대신 대학에서 기를 수 있는 개인의 다양한 능력을 보고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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