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원 얕은 지진에 진흙 벽돌집 와르르…천년고도 폐허로

권한울 기자(hanfence@mk.co.kr) 2023. 9. 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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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120년만에 최대 지진
충격 견디기 힘든 흙집 많고
주민 잠든 새 덮쳐 아비규환
1400명 중태로 희생자 늘듯
"머리 위로 비행기 떨어진 줄"
세계문화유산도 일부 손상
美·佛·튀르키예 등 구호 물결
국교단절 알제리·이란도 조의

◆ 모로코 대지진 ◆

울부짖는 여인 규모 6.8의 강진이 북아프리카 모로코를 덮친 가운데 9일(현지시간) 중부 도시 마라케시에서 한 여인이 지진으로 허물어진 집을 바라보며 울부짖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120년 만에 강진이 발생해 20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2000명이 넘는 부상자 중 1400명가량이 중태인 데다 추가 수색과 구조 작업이 이뤄지고 있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8일 밤 11시 11분께 모로코 서남부 중세 고도 마라케시에서 75㎞ 떨어진 지점에서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강진이 마라케시뿐만 아니라 모로코 대서양 연안의 휴양지 아가디르와 남동부 주요 도시 와르자자트까지 흔들며 모로코 중심부를 관통했다고 전했다. USGS는 모로코 오우카이메데네 마을 근처에서 약 26㎞ 깊이로 비교적 얕은 지진을 감지했으며 포르투갈, 스페인, 알제리에도 약한 흔들림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마라케시 외곽에 사는 라자 부리(33)는 "비행기가 내 위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마라케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48㎞ 떨어진 진앙지 인근 아미즈미즈 마을에 사는 야스미나 베나니(38)는 NYT에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큰 소리를 들었다"며 "공포를 느꼈고,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몇 년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진흙 벽돌로 지은 집에 사는 그는 지진으로 벽에 금이 가고 꽃병과 램프가 깨졌으며 천장 일부가 바닥으로 떨어져 부엌이 먼지와 파편으로 막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모로코 남동부 시골마을 메즈구이다에에서는 여진을 두려워한 주민들이 거리에서 잠을 잤다고 NYT는 전했다.

여진 공포에 거리로 9일(현지시간) 규모 6.8의 강진이 강타한 모로코 마라케시 주민들이 지진 여파에 광장으로 대피한 채 노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피해는 지진과 폭우에 취약한 전통 건축방식인 진흙 벽돌집이 많은 시골 지역에 집중됐다. 많은 사람이 잠든 심야에 진원이 얕은 강진이 닥치면서 피해가 더 커졌다. USGS는 "지진 깊이가 얕고 인구 밀집 지역과 가까워 많은 건물이 심각하게 흔들렸고 이는 치명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본진 발생 20분 후 규모 4.9의 대규모 여진이 한 차례 발생했으며 더 작은 여진이 계속 감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USGS는 전했다. 오마르 파르카니 전 모로코 건축가협회장은 "진앙지 인근 지역에는 이 정도 강진을 견딜 수 없는 흙집이 많다"면서 "이 지역 주민은 너무 가난해 직접 집을 짓거나 저숙련 노동자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많은 마을이 마라케시 주변 험준한 산에 지어졌을 뿐만 아니라 시골의 몇 안 되는 도로가 지진 잔해에 막혀 초기 구조 활동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모로코 내무부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최소 2012명(10일 기준)이 사망하고 2059명이 부상을 입었다. USGS는 이번 지진 규모를 6.8로 추정했지만, 모로코 지질연구소는 7.2로 추정했다고 NYT는 전했다.

USGS는 이번 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1000~1만명에 달할 가능성이 35%로 가장 높다고 전망했다. 10만명 이상이 될 경우의 수도 6%로 예상됐다.

특히 마라케시 남동부 시골 지역 하우즈와 하이 아틀라스 산맥 일부가 포함된 지역에서 피해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성명을 통해 "마라케시와 그 외곽 민간인 30만명 이상이 지진으로 피해를 당했다"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라케시 메디나 일부도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특히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로 '마라케시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쿠투비아 모스크의 첨탑(미너렛) 또한 일부 손상된 것으로 전해졌다. USGS는 "흔하지는 않지만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고 NYT는 전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와 유라시아판 사이 슬로 모션 지각 충돌이 일어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는 설명이다. AP통신은 규모 6.8의 지진은 120년 만에 모로코를 강타한 가장 강력한 지진이라는 전문가 의견을 전했다.

세계 각국과 국제기구 등은 모로코 강진 피해를 애도하고 지원 의사를 밝혔다. 한때 모로코를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가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 모로코 주재 프랑스대사관은 위기 핫라인을 개설했고,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유 시장은 자매 도시인 마라케시에 구조 활동을 위한 소방관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모로코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고, 약 7개월 전 5만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대지진을 겪은 튀르키예도 구호 요원과 텐트 등을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이고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상도 나란히 모로코에 대한 연대 의사를 표명했다. 모로코와 국교를 단절한 알제리와 이란 정부 역시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전 세계 지원 제의에도 모로코 정부는 외국 구조대 배치를 위해 필요한 공식 지원을 아직 요청하지 않고 있다. 모로코 당국은 3일간 국가 애도 기간을 발표했다.

[권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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