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유엔총회 왕이 돌연 불참 11월 미중 정상회담 무산위기"

"왕이 대신 한정 부주석 참석
시진핑 방미 가능성 낮아져"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사진)이 오는 19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중국 측 대표로 참석하기로 했다가 뚜렷한 이유 없이 불참하는 쪽으로 일정을 변경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익명 소식통 말을 인용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왕이 부장 불참으로 오는 11월 미·중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측 대미(對美) 외교채널은 지난 7월 말까지만 해도 각국 정상급 대표가 참석하는 이달 유엔총회에 왕이 부장이 참석할 예정임을 시사해왔다.

하지만 갑자기 외교 수장인 왕이 부장 대신 한정 국가부주석을 보내는 것으로 방침을 변경했다. 중국 국가부주석은 헌법상 국가주석의 업무를 보좌하며 주석의 위임을 받아 주석 직권 일부를 대행할 수 있으며 주석 궐위 시에는 주석 직위를 승계하는 중요한 자리다.

하지만 부주석은 통상 정상급이 초청되는 외교 행사 등에서 국가주석을 보좌하는 역할만 담당하는 등 외교정책 핵심 라인과는 거리가 있다. 특히 왕이 부장은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24명) 위원이지만 한정 부주석은 중앙정치국 위원이 아니다. 왕이 부장의 유엔총회 불참으로 오는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핵심 이벤트로 꼽히는 미·중 정상회담 성사 여부도 불투명해졌다고 WSJ는 평가했다. 미국은 왕이 부장이 유엔총회에 참석하면 대면회담을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 계획을 본격적으로 협의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왕이 부장의 유엔총회 불참 결정은 샌프란시스코 APEC 회담을 앞두고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등 대중 규제와 관련해 미국 측 양보를 얻어내려는 중국의 압박 전략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배제하는 미국의 '디리스킹'에 맞서 중국이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를 실시하고 애플 아이폰 사용 제한 조치에 나서는 등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11월 미·중 정상회담 성사 여부는 향후 양국 관계 방향을 설정하는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왕이 부장의 방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국 외교가에서는 유엔총회 일정과 별개로 왕이 부장이 미국을 찾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왕이 부장은 앞서 조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 초청을 원칙적으로 수락했으며 방문 일정을 잡기 위해 미·중 양측 모두 노력하고 있다고 중국 측과 가까운 한 외교 소식통이 WSJ에 전했다.

[베이징 손일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