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월요일] 석류의 순간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9. 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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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들의 과잉을 견디다 못해

방긋 벌어진 단단한 석류여,

스스로 눈을 뜨고 황홀해하는

고결한 이마를 보는 듯하다!

오, 반쯤 입 벌린 석류여,

감내해 온 태양의 나날이

오만에 시달려온 너희로 하여금

붉은 보석의 칸막이를 찢게 했을지라도,

비록 말라빠진 황금의 껍질이

어떤 힘에 눌려 붉게 터진다 해도,

이 빛나는 파열은

내 옛날의 영혼으로 하여금

자신의 은밀한 내력을 꿈꾸게 한다

- 폴 발레리 作 '석류'

대시인 발레리가 붉게 익어 벌어진 석류를 보고 쓴 시다. 터진 열매 속에서 쏟아져 나온 붉은 석류 알맹이들은 폭죽 같아 보이기도 하고, 저항처럼 보이기도 한다.

태양이 준 에너지를 받으며 견딜 만큼 견딘 날들이 어느 한순간 터져버린 정점의 순간을 잘 묘사했다. 묘사만으로도 이렇게 깊이 있는 시를 만들어낸 걸 보면 역시 대가는 대가다.

늘상 하는 말이지만 자연의 순환은 아름답고 유장하다.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그 힘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일. 그게 인간의 일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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